31층 자부심… 70년대 마천루시대 열다
고도성장-산업화 열망의 상징
발전하는 국가 이미지와도 연결
독일 근대건축의 거장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가 유리로 만든 직육면체의 고층 오피스 건물을 통해 선보인 ‘균질공간’은 이런 근대 도시의 생활 문화를 건축으로 구현한 것이었다. 오늘날 대도시를 메운 고층 오피스 건물은 사무 기능을 갖춘 공간인 동시에 도시의 구조적 특징을 표현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삼일빌딩은 반데어로에가 설계한 고층 오피스 건물인 미국 뉴욕 ‘시그램 빌딩’과 형태와 비례가 비슷하다. 단정하면서도 추상적인 형태로 만들어진 이 건물은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해 1970년에 완공했다. 지어진 지 벌써 39년이 됐지만 아직도 주변 어느 건물 못잖게 기품 있고 세련돼 보인다.
삼일빌딩은 한국의 ‘마천루 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1985년 서울 여의도 63빌딩이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서울의 발전을 상징했다. 18층 서울 중구 남대문로 조흥은행 본점 건물이 우뚝해 보였던 시절, 31층 삼일빌딩은 이보다 무려 13층이나 높은 경외의 대상이었다. 남산 1호 터널을 빠져나와 지금은 없어진 청계고가도로를 넘어갈 때 곧장 눈앞에 들어오는 것이 이 건물이었다. 삼일빌딩은 그렇게 고도성장을 상징했던 남산 터널과 청계고가도로와 늘 맞물려 각인됐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이 건물이 경제 성장의 자랑으로 실려 있었고, 건물 맞은편 도로에는 걸음을 멈추고 서서 이 건물의 층수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세보는 사람이 많았다. 옛 화신백화점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삼일빌딩 층수를 헤아리는 게 서울의 관광 코스일 정도였다. 고도성장과 산업사회를 꿈꾸던 당시 한국 사회가 삼일빌딩에는 오롯이 배어 있었다.
철골조에 검은 색조 유리로 마감한 삼일빌딩의 내부는 뒤에 지어진 인근 오피스 건물에 비해 오히려 더 넉넉해 보인다. 수평 구조부재인 보를 뚫어 공기조화장치를 배열한 덕분에 천장 높이를 확보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건물의 외양도 둔하지 않고 날렵해 보인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⑬회는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의 ‘서울 서초구 고속터미널과 센트럴시티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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