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에 안 맞는 업무, 팍팍한 인간관계, 답 안 나오는 하루하루….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이들은 누구나 여행을 꿈꾼다. 그래선지 소설가 해이수 씨(36 ·사진)의 두 번째 소설집 ‘젤리피쉬’(이룸)는 우선 눈이 즐겁다. 히말라야의 설산, 네팔의 사원, 케냐의 열대초원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낯선 언어와 이국의 정취는 상상력을 증폭시키고 마음을 들뜨게 한다.
첫 번째 소설집 ‘캥거루가 있는 사막’에서 호주 유학생과 이민자의 현실을 핍진하게 그려냈던 작가는 이번엔 외국 여행기를 주로 다뤘다. 여행지나 타국에서의 생활을 그리는 것에 대해 그는 “익숙한 환경보다 낯선 환경에서 자아의 내면과 욕망이 훨씬 민감해진다”며 “스스로를 객관화하기에도 좋다”고 설명한다.
소설 속에서 여행을 떠난 이들은 현실에서 풀어야 할 저마다의 문제가 있다. 결혼 뒤 수년간 유능한 아내에게 빌붙어 살며 전업주부로 지내온 남편, 원고를 마감하지 못한 채 도피 삼아 네팔 고원으로 떠난 대학강사, 실업대란 속에서 딱히 할 일을 찾지 못한 청년….
현실을 떠나고 싶었지만 현실 문제들은 여행의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노정된다. 세상과 동떨어진 것 같은 히말라야 고원 정상에서도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신용카드다. 폭설에 꼼짝 없이 발 묶여 있을 때 돈과 힘을 가진 이들이 헬기를 타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것을 나머지 사람들은 목을 꺾어 올린 채 구경할 수밖에 없다.
좌충우돌의 상황에서 등장인물들은 삶의 진리를 체득하는 환상적인 경험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질문을 품기도 한다. 때론 그것이 “이런 젠장, 에베레스트에 올라갔다 오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라는 울분의 깨달음일지라도.
작가는 외부에서 자극을 얻기 위해 여행을 자주 떠난다고 한다. 그는 “여행은 신체의 오감을 활짝 열어서 자신의 질문에 집중하는 일종의 순례”라고 정의한다.
“소설이란 게 원래 타인의 삶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거잖아요. (여행을 소재로 함으로써) ‘그곳의 너’를 통해 ‘이곳의 나’를 돌아볼 수 있도록 의도했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그곳이 어디든, 또 얼마나 멀고 낯설든 소설이 또렷이 부각시키는 것은 결국 ‘지금 이곳의 우리’에 관한 것들이다. 별천지나 신세계 같은 여행지, 그곳에서 얻는 모범정답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 속 한 구절처럼 작가는 “여행의 즐거움은 해답을 얻는 것보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알게 될 때 더 커진다”고 일러주고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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