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오래, 열심히, 마음을 다해, 바라보고 기다린 덕분이다. 이 땅의 소나무가 세계무대에서 신령한 나무로 주목받게 된 것은.
2005년 팝스타 엘턴 존이 그의 ‘소나무’ 사진을 2700만 원에 구입한 뒤 해외경매에서 작품가격이 억대로 치솟아 유명해졌다. 2006년 동양 사진가로는 처음 스페인 티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올해 6월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그의 사진집을 선물했다. 그의 이름은 사진작가 배병우 씨(59).
국립현대미술관은 12월 6일까지 덕수궁미술관에서 그의 초기작부터 스페인 문화재관리국의 요청을 받아 2년간 찍은 알람브라 궁전의 정원 등 근작까지 97점을 선보이는 ‘배병우’전을 열고 있다. 전시에선 그를 대표하는 소나무 사진을 비롯해 고향 여수의 풍경을 담은 바다와 바위 사진, 부드러운 능선을 포착한 제주 오름 사진, 시간의 더께를 담은 창덕궁과 알람브라 궁전의 사진을 두루 볼 수 있다.
‘사진은 현대의 붓이다. 문제는 그 붓으로 무엇을 그릴까 하는 것이다. 나는 예술가이지 사진가가 아니다.’ 이 같은 지론을 담은 그의 작품은 사물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회화적 사진으로 평가받는다. 흑백 대비 속에서 웅숭깊은 고요와 부드러움이 녹아든 소나무 사진에선 전통 수묵화의 느낌이 살아있고 보랏빛 새벽하늘이 인상적인 알람브라 궁전 사진에선 미니멀한 추상 같은 느낌을 길어 올린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내 사진은 전혀 조작이 없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가 찍는 사진이다”라고 설명했다. 1984년부터 25년간 소나무 사진을 찍었지만 전시에 나온 대부분 작품은 3, 4일 동안 찍은 사진이다. 예컨대 경남 함양에서 찍은 소나무의 경우 아침에 짙은 안개가 밀려오더니 뒤쪽에 비닐하우스를 덮어버린 한순간에 촬영한 것이다.
“우리에겐 선(線) 개념만 있다. 나는 사진의 음영을 없애고 한국화가 지닌 선 중심의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것이 소나무와 오름 사진에서 적절히 표현된 것 같다.”
선과 빛이 어우러지고, 한국적 미감과 세계와 소통 가능한 감성이 조화를 이룬 사진으로 우뚝 선 작가. 그는 “맨 처음 사진을 남해안에서 시작한 만큼 앞으로 여수에서 제주까지 남해안을 25년간 찍을 수 있다면 행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소나무 사진은?
“소나무 덕분에 유명해져서 안 찍을 수가 없다.(웃음) 낮에 강렬한 햇빛이 나무에 닿고 바람이 불어주면 여전히 맘이 설렌다.”
14일 오후 2시 작가와의 만남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있다. 12월 6일까지. 02-2188-6000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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