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시해 114년후 바로 그날… ‘명성황후’ 日 울리다

  • 입력 2009년 10월 9일 02시 58분


1995년 뮤지컬 초연 후 구마모토서 첫 일본 공연
시해가담자 후손 등 관람… 배우 열창에 객석 숙연

8일 일본 규슈 구마모토 가쿠엔대 60주년 기념관 다카하시 모리오홀. 552석 규모의 강연장이지만 이른 저녁부터 많은 관객이 밀려들었다. 대학 측은 100여 석의 좌석을 추가로 마련했으나 60여 명은 서서 공연을 지켜봐야 했다. 이 자리에서는 한국 뮤지컬 ‘명성황후’의 특별공연이 열렸다. 1995년 한국에서 초연된 뒤 처음 열린 일본 공연이었다.

이날은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 정부에서 동원한 ‘낭인’들에게 시해된 기일이었다. 구마모토는 시해사건에 가담한 일본 낭인 48명 중 21명의 출신지다. 시해현장을 지휘한 일본어신문 한성신보사의 사장 아다치 겐조와 주필 구니토모 시게아키, 편집국장 고바야가와 히데오 등이다. 공연을 후원한 구마모토 최대 지역신문 구마모토니치니치신문의 공동창립자 8명 중 3명이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인사다. 구마모토성은 임진왜란 때 조선 침략의 선봉장이었던 가토 기요마사의 영지이기도 하다.

이날 공연은 2시간 10분 분량의 공연을 1시간 분량으로 줄인 공연 실황을 일본어 자막과 함께 대형 스크린으로 상영하면서 주요 노래 다섯 곡은 한국 배우들이 직접 부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명성황후 역의 이태원, 고종 역의 박완, 명성황후의 근위대장 홍계훈 역의 지혜근 씨 등이 현장에서 열창을 펼쳤다.

이태원 씨가 ‘기구하고 힘겨워라 이 땅의 왕비여/한 목숨 보존조차 힘들었던 삼십년’이란 가사의 ‘어둠을 비춰다오’를 오열하듯 부르자 장내는 숙연해졌다. 객석 맨 앞에 앉아 이를 지켜보던 백발노인의 양 볼이 눈물로 촉촉이 젖었다. 시해범 중 주범격인 구니토모의 외손자 가와노 다쓰미 옹(87)이었다. 가와노 옹은 2005년 5월 한국을 찾아 명성황후와 고종이 합장된 홍릉을 찾아 사죄의 참배를 한 주인공. 당시 참배 내용은 올해 8월 TV아사히를 통해 일본 전역에 방송됐다.

공연 직전 손자와 함께 이태원 씨를 찾아와 팔찌를 선물한 그는 공연이 끝난 뒤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강제병합까지 했지만) 결국 일본이 한국에 진 것”이라며 “한일 간 진정한 우호관계를 설립하기 위해선 이 작품이 꼭 도쿄에서 공연돼야 한다”고 말했다.

‘명성황후’의 일본공연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를 비롯해 그동안 여러 차례 추진됐으나 번번이 일본 주최 측의 석연찮은 사정으로 중단됐다. 이날 공연도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등 일본 내 민간단체가 주도한 ‘뮤지컬 명성황후 구마모토 실행위원회’의 노력으로 어렵게 성사된 무료공연이었다. ‘명성황후’를 제작·연출한 윤호진 에이콤 대표는 “여기까지 오는 데도 정말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며 “일본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내년이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을 맞는 해인 만큼 정식 공연이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구마모토=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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