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그림 속에 푸른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은 하늘이 눈을 황홀하게 한다. 그 아래 의젓하게 자리 잡은 히말라야의 하얀 설산. 산과 하늘이 어우러지면서 신비롭고 신성한 기운을 뿜어낸다.(서울아트센터의 ‘강찬모’전)
잿빛 도시에서 하늘빛 여백을 되살려낸 작품들을 만났다. 한만영 씨(63·성신여대 교수)와 강찬모 씨(60), 두 중견작가의 전시다. 삶을 향한 긍정적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기회다.
○ 한만영전
최근 그는 바이올린과 첼로를 캔버스로, 해체된 민화와 명화 이미지를 물감으로 대체한 콜라주 작업에 관심을 쏟아왔다. 그 결실을 모은 전시장에선 하늘색으로 칠한 바이올린 설치작품, 손때 묻은 악기의 표면에 민화와 명화의 기념비적 이미지를 뜯어 붙인 크고 작은 오브제 작업을 볼 수 있다. 시간과 공간, 평면과 입체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시간의 복제’ 시리즈 연작들이다.
그의 작품은 기성품(악기)과 복제품(명화 이미지), 시각과 청각이 결합해 다층적 의미를 생성한다.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명화 이미지를 대중기호로, 대중문화를 고급문화로 변환시켜 놓은 작업 과정은 무거운 철학적 주제를 가벼움으로, 가벼움을 심오함으로, 현실을 비현실로, 비현실을 현실로 시각화 한 것이다.” 전통과 현대, 구상과 추상 등 이분법적 사고와 고정관념을 깨뜨림으로써 얼핏 모순처럼 여겨지는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찾아내려는 시도다.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노화랑. 02-732-3558
○ 강찬모전
넓은 전시장을 가득 채운 그림들을 보는 순간,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우러난다. 천지만물에 각인된 신의 존재를 읽어내는 범신론적 사유가 작품에 녹아있어서다.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화면의 배경인 하늘에서 뿜어나오는 다양한 빛과 색채. 이른 새벽의 향기를 머금은 연푸른 하늘부터 오색찬란한 별들이 빛나는 검푸른 하늘까지 그야말로 ‘깊고 푸른 밤’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이어 머리에 흰 눈을 얹거나 검은 돌산으로 이어진 히말라야의 산마루와 지리산 등 한국의 산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황홀한 색채의 마법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별과 새. 사실적이면서 동시에 추상화된 그림 속 이미지들은 하나하나 영혼을 지닌 존재처럼 다가온다. 자연을 대하고 보듬는 화가의 마음이 순수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보기엔 강찬모의 그림은 그림을 단순한 노동 외에 그리는 것으로서의 기도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평론가 오광수)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공평동 서울아트센터. 02-3210-0071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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