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지구에 출연한 것은 3억8500만 년 전. 최초의 나무는 햇빛을 많이 받기 위해 키가 8∼12m 정도로 컸고 가지와 잎이 꼭대기에만 달린 빗자루처럼 생겼다. 1870년 뉴욕에서 화석이 발견된 이 나무에는 와티에자라는 이름이 붙었다.
저자는 나무 박사다. 경남 양산 영축산 꼭대기에 흙집을 짓고 25년간 혼자 살았다. 나무를 비롯해 약초, 야생화, 동물을 연구했다. 책에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나무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이 담겨 있다.
밤나무는 기찻길 침목으로 많이 쓰이며 타닌이 들어 있는 줄기 껍질은 염색약이나 방부제의 원료가 된다. 밤나무의 이름은 ‘밥 같은 나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율곡 이이는 선조에게 10만 양병설과 함께 밤나무를 대량으로 심어 식량으로 삼을 것을 청했다. 율곡이라는 호에는 ‘밤나무골’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일곱 가지 덕을 지닌 나무라 하여 감나무는 ‘칠덕수’라고 불렸다. 벌레가 꼬이지 않고, 오래 살며, 잎이 무성해 좋은 그늘이 된다. 하지만 가지가 약해서 감을 따러 올라갈 때는 조심해야 한다.
뽕나무는 왕실의 나무였다. 조선시대 태종은 궁궐에 뽕나무를 심고 왕비에게 직접 누에를 치게 했다. 성종은 1년에 한 번 직접 뽕나무를 돌보는 모범을 보였다. 식목일도 이날을 기념한 것이다. 조선 왕실은 지금의 서울 잠실에 뽕나무 밭을 두고 직접 관리했다.
세종은 결이 곱고 단단한 느티나무로 전투선을 만들라는 기록을 남겼다. 어리고 연한 잎은 사월초파일에 쌀가루, 팥고물과 섞어서 느티떡을 만든다.
음나무는 귀신을 쫓는 효과가 있다고 해 예전에는 대문과 방문에 음나무 가지를 걸어뒀다. 어린아이에게는 노리개로 만들어 옷깃에 달아줘 악귀를 쫓은 음나무는 마을 정자 옆에도 심었다. 부부 금실을 좋게 하려고 두 그루의 줄기 껍질을 벗겨내 묶어서 심기도 했다. 이것을 ‘연리지(連理枝)’라고 불렀다.
저자의 흙집 기둥은 살아 있는 떡갈나무다. 그는 “밤마다 촛불을 켜놓고 약초를 공부할 때마다 떡갈나무가 말을 건넨다”고 말한다. ‘약초 공부보다 자연과 하나 되는 더 큰 삶을 꿈꾸라고….’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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