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실패한 인생이란 없다…‘밴버드의 어리석음’

  • 입력 2009년 10월 10일 02시 58분


◇ 밴버드의 어리석음/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옮김/399쪽·1만4000원·양철북

1850년대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고 부유한 예술가는 존 밴버드였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그가 고안한 ‘움직이는 파노라마’였다. 그림을 그린 거대한 천의 양 끝을 밧줄 고리로 묶어 줄을 따라 천을 움직이게 하는 작품이었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아이디어 작품이었고, 최초의 활동사진이었던 셈이다. 움직이는 그림에 내레이션을 넣고 피아노 연주를 곁들이자 곳곳에서 관객들이 몰렸다. 그는 미국을 휩쓸었다. 동전을 수레 가득 실어 은행에 맡기는 일이 일과였다고 한다. 덕분에 미국 롱아일랜드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 성(城)를 하나 갖고 살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작품을 모방한 해적판이 출현했다. 그는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다른 사업을 시작했지만 수완이 부족해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재산을 모두 탕진했고 결국 성마저 빼앗긴 채 초라한 죽음을 맞았다. 밴버드가 살았던 이 성을 훗날 사람들은 ‘밴버드의 폴리(folly)’라고 불렀다. 밴버드의 어리석음이란 뜻으로, 실패로 생을 마감한 것에 대한 비아냥이었다.

지금 밴버드의 ‘움직이는 파노라마’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를 기억하고 싶어 하는 저자가 이 책을 썼다. 역사에서 잊혀진 13인의 독특한 삶을 소개한 논픽션이다.

밴버드처럼 시대를 앞서가는 생각을 했지만 수완이 부족해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또 있다. 1870년대 미국 최초로 뉴욕 시에 지하철 시험운행에 성공했으나 한 정치가의 악랄한 방해 공작에 밀려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한 앨프리드 엘리 비치 같은 사람이다.

기발한 발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거짓으로 판명돼 수모를 겪은 사람도 있다. “지구 안은 텅 비었다”며 지구공동설을 주장했던 19세기 미국의 존 클리브스 심스, 파란빛이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던 19세기 미국의 오커스터스 플리즌튼 등. 한때 잘나갔지만 시대를 맞추지 못한 탓에, 정직하지 못하거나 과도한 외고집 때문에, 혹은 운이 따라주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고 역사 속에서 사라진 사람들이다.

저자는 우연히 잡지의 목차를 복사하다 이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했다고 한다. 저자의 눈에는 이들의 성공과 실패는 중요하지 않다. 서로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을 놓고 저자는 “능력보다 꿈이 앞선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실패를 바라보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 유머와 위트가 읽는 이를 기분 좋게 한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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