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역사-음악 배우니 노년 고민 스르르”

  • 입력 2009년 10월 10일 02시 58분


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는 서울시 어르신 인문학 아카데미 수료식이 열렸다. 이날 마지막 수업에 참석한 어르신들이 인도네시아 전통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시
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는 서울시 어르신 인문학 아카데미 수료식이 열렸다. 이날 마지막 수업에 참석한 어르신들이 인도네시아 전통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시
어르신 인문학 아카데미 올해 3000명 수강 인기

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꼬스트 홀. 객석을 메운 노인 100여 명이 인도네시아 전통 악기 ‘밤벨’을 들었다. 처음 배우는 악기인 탓에 어색한 연주가 이어졌다. 강사는 “가요 ‘바위섬’을 연주해보면 쉬울 것”이라고 했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곳에….” 익숙한 노래가 흐르자 한결 나은 연주가 나왔다. 조금씩 화음이 맞아가자 금세 환한 미소가 흘렀다. 한 시간 뒤 “수업을 끝내겠습니다”라고 강사가 말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노인들은 “수업 끝나고 집에 가는 시간이네”라며 웃었지만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 인문학 바다에 빠진 어르신들

이들이 아쉬워했던 이유는 서울시가 8월부터 운영해온 ‘어르신 인문학 아카데미’ 2기 수업이 이날로 모두 끝났기 때문. 이 과정은 노인들도 인문학을 배우며 제2의 인생을 설계해보고, 지적 호기심을 채워보자는 뜻에서 마련됐다. 처음 운영된 지난해 780명의 수료자를 배출하며 호응을 얻자 서울시는 올해 수강인원을 3000명으로 늘렸다. 내년에는 5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수강생들은 서울시니어아카데미 등이 서울시내 25개 자치구마다 하나씩 마련한 강의실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을 받았다.

어르신 인문학 아카데미가 복지관이나 노인대학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과 다른 점은 교과과정에 인문학이 대거 포함됐다는 것. 서울시 관계자는 “노인들도 인생에 대한 고민을 문학이나 역사, 미술, 음악 등의 인문학을 공부하며 풀어내고픈 욕구가 크다”며 “레크리에이션 등 오락 위주의 프로그램보다 호응도가 훨씬 높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수준 높은 강의가 가능하게끔 대학교수들을 대거 참여시켰다. 윤지영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나의 노후설계’를 주제로 노년을 행복하게 사는 법을 인문학과 함께 소개하며 눈길을 끌었다. 이경희 이화여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어르신들도 좋은 이미지를 갖춰야 노년에도 미덕을 갖출 수 있다”며 ‘이미지 만들기’라는 강의를 진행했다. 이 밖에 성(性) 이야기, 미디어, 고령화사회, 웰다잉(well-dying), 웃음치료, 역사탐방 등 노인들이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강의들이 두 달 동안 이어졌다.

○ 새 삶 설계도 인문학으로

수업이 끝나자 곧바로 수료식이 열렸다. 2기 수강생 1300여 명 중 먼저 과정을 마친 287명이 수료증을 받았다. 수강생을 대표해 수료증을 받은 민양기 씨(61)는 “평소 책 읽을 시간도 없었는데 수업을 받으며 노년기를 대하는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졌다”며 “노인으로서의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 법과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성북구 석관동 성당에서 노인대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관님 씨(58·여)는 “노인들의 지적욕구는 높은데 그만큼의 강의를 제공하지 못해 늘 아쉬웠는데 이제 노인대학에 돌아가면 얘기할 것들이 많아져 뿌듯하다”며 웃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하는 이들의 품속에는 수료증 한 장이 정성스레 안겨 있었다. 문의는 서울시 어르신 포털 홈페이지(9988.seoul.go.kr).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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