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10시 53분 대전 대덕구 송촌동 대전시무형문화재전수회관. 고향임 명창(52)이 춘향가를 완창하자 “얼씨구” “얼쑤” 축하 추임새가 물결처럼 객석으로 퍼져 나갔다. 고 명창은 이날 오후 2시 춘향 어머니의 태몽을 묘사한 “영웅열사, 절대가인 삼겨날 제(생겨날 때)…”로 시작해 무려 8시간 53분 동안 춘향가를 완창했다.
2시간여 만에 한 번, 10분씩만 옷을 갈아입고 물로 목을 축이는 휴식 시간을 가지면서 A4용지 80쪽 분량의 춘향가 사설을 자막 도움도 없이 불렀다. 그의 장단을 맞추기 위해 김규형 새울전통타악진흥회예술단장(전 국립국악관현악단 악장) 등 4명의 고수가 차례로 북채를 잡았다.
고 명창은 시간이 가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현장에서 만난 목원대 국문학과 최혜진 교수(판소리 이론 전공)는 “마지막으로 갈수록 소리가 안정적이고 또렷해졌으며 쩌렁쩌렁해졌다”고 말했다.
이날 완창한 춘향가는 명창들도 좀처럼 완창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동초제 춘향가. 동초 김연수 명창(1907∼1974)이 여러 춘향가의 좋은 대목들을 두루 넣어 춘향가 가운데 가장 길다. 완창에 4∼6시간이 걸리는 다른 춘향가에 비해 엄청난 공력이 필요하다.
그는 명창 반열에 올랐지만 부르기만 하면 지역의 자그마한 공연에도 빠짐없이 참가해 소리 한 자락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변에서 품격에 맞는 자리만 가라고 권유하면 “판소리를 들어봐야 좋은 것인지 알 것 아니냐”며 듣지 않는다.
고 명창은 전북 군산 출신으로 연극을 하다 20대 중반의 다소 늦은 나이에 판소리 인간문화재인 오정숙 명창의 눈에 띄어 ‘오정숙 이수자’로 지정됐다. 2000년 서울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판소리 대상, 2006년 제32회 전주대사습 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 장원(대통령상)을 차지했다. 이론적 접목을 위해 목원대 한국음악과를 2002년 졸업한 뒤 2004년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고 명창은 “앞으로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의 완창에 차례로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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