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헤어스프레이’ 주인공이 박경림이라고?

  • 입력 2009년 10월 14일 15시 31분


박경림.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박경림.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의 한장면. 동아일보 자료 사진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의 한장면. 동아일보 자료 사진
방송인 박경림 씨(30)가 지난달 중순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의 주인공으로 뽑히자 많은 사람들이 물음표를 던졌다. "뮤지컬…? 박경림이라고?" 올 가을 겨울 무대에 오르는 대형 뮤지컬 출연자 가운데 가장 '과감한 선택'으로 꼽히는 그를 9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커피전문점에서 만났다.

"'어떤 소리를 낼까' '어디서 실수할까'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다면서요? (웃음) 뮤지컬 배우와 지망생들이 '단역이라도 맡으려고 밤새 연습하는 데 넌 뭐냐'고 쓴 글도 인터넷에서 봤어요. 그렇지만 저, 다른 뮤지컬은 관심 없어요. '헤어스프레이'라서 꿈을 꿨고 도전한 거에요."

그가 맡은 역할은 뚱뚱하고 못 생긴 10대 소녀 '트레이시'. 공부보다 춤추는 걸 좋아하다 우여곡절 끝에 TV 댄스경연대회에서 우승하고 멋진 남자친구까지 갖게 된다는 이야기다. 1960년대 미국 볼티모어가 극의 배경이다.

오디션서 심장소리 들리도록 '덜덜'

박 씨는 2007년 '헤어스프레이' 초연 때 오디션에서 떨어진 뒤 협력프로듀서라는 이름으로 제작발표회 사회를 봤다. 배우들이 시연할 때 쭈그려 앉아 울었다. '저 자리에 서고 싶은데….'

대형 콘서트에서 사회를 보면서도, 심지어 대학 입시 때도 담담했다는 그가 올해 오디션에서는 심장소리가 들릴 정도로 덜덜 떨었다. 노래를 마친 뒤 심사위원이 "꽤 잘 하네"라고 말하자 눈물이 저절로 주르르 흘렀다.

박 씨의 보컬 트레이닝을 맡은 이정아 씨는 "거친 소리, 쇳소리, 탁한 소리…. 경림 씨 목소리는 나쁘다는 조건은 다 갖췄어요."라고 말했다. "피곤하고 듣기 싫은 목소리죠. '헤어스프레이' 오디션을 앞두고 찾아왔을 때 제가 그랬어요. 그냥 취미로 하시죠, 라고."

첫 레슨 때 박 씨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이 씨는 '그럼, 그렇지'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끝날 무렵 귀가 번쩍 했다. 한순간 아주 맑고 청명한 고음이 들렸다는 것.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씨의 성실함과 열정도 마음을 움직였다. 이 씨는 "박 씨의 고음에 숨어있던 '청정지대'를 들으면 깜짝 놀랄 것"이라고 귀띔했지만 이날 박씨가 그 목소리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크리스틴이나 '미녀와 야수'의 벨 같이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는 당연히 죽었다 깨나도 못 내요. 하지만 트레이시라면 열심히 노력해서 해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어요. 불가능한 일인데 제 욕심 채우려고 최고의 뮤지컬을 망치는 일은 안 해요."

"첫눈에 제 얘기 같았어요"

'헤어스프레이'와의 인연은 6년 전 시작됐다. 한창 솟구치는 인기를 뒤로 하고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난 2003년. 친하게 지내던 정범진 뉴욕경찰청 부장검사가 "여주인공이 꼭 너 같다"면서 '헤어스프레이' 티켓 2장을 선물했다.

영어 대사와 노래를 절반 밖에 알아듣지 못했지만, 바닥에서 성공을 이룬 트레이시는 '또 다른 박경림'으로 여겨졌다. 다음날 표를 또 사서 봤다. 이후 시간 나는 대로 극장을 찾아갔다. 그렇게 본 게 15번을 넘는다. '헤어스프레이' OST 앨범은 눈 뜨자마자 함께 하는 유학생활의 벗이었다.

"언어도 배경도 달랐지만 남 이야기 같지가 않았어요. 저 역시 어렵게 자랐지만 꿈 많은 고등학생이었고,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방송에 출연하는 꿈을 이뤘으니까요. 그리고 저도 예뻐서 뜬 건 아니었잖아요?(웃음)"

트레이시로 무대에 서고 싶었지만 아무도 주인공을 시켜줄 것 같지 않아 직접 제작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모아둔 돈 1300만 원을 들고 브로드웨이 '헤어스프레이' 사무실을 찾아갔다. 이미 신시뮤지컬컴퍼니가 라이선스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해 무작정 전화했다. "뭐라도 할 테니까 시켜만 주세요."

그는 2007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우수상 수상소감에서도, 올해 3월 출산휴가를 마치고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MC로 복귀할 때도 "다음 목표는 뮤지컬"이라고 말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덜 부담스럽다고 했다.

"남들이 뭐라 해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넘버 '굿모닝 볼티모어' 가사에 이런 게 있어요. '언젠가 뜨게 되면 온 세상이 반겨 주리라.' 많은 사람들이 뮤지컬 무대에 선 저를 보고 새로운 꿈을 꾸리라 확신해요. 진정 원하면 안 되는 일은 없으니까요." 11월 28일~2010년 2월 7일 한전아트센터, 4만~8만원. 1544-1555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