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보석은 초청쇼서 ‘찜’… 개인 쇼퍼가 취향껏 대령 백화점들이 정기 세일을 진행 중인 9일,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1층에 있는 명품 매장에는 신상품을 보려는 고객들로 붐볐다. 백화점의 3분기 매출을 명품이 끌어올리고 있다는 분석을 증명이나 하듯 손님이 많았다. 그런데 모피로 유명한 펜디 매장에서 한 고객은 다른 제품은 둘러보지도 않고 들어와 미리 포장해 둔 박스를 들고 나갔다. 그 안에는 이 고객이 이미 5월에 구입한 2000만 원이 넘는 밍크 모피코트가 있었다.
○ ‘9월 모피는 VIP, 5월 모피는 VVIP’ 신동한 현대백화점 명품 바이어는 “9월 무렵 백화점 매장에서 모피 제품을 구입하는 것만으로도 VIP 고객이지만, VVIP 고객들은 이미 5월쯤 호텔에서 열리는 별도의 쇼를 통해 모피 제품을 사들인다”고 말했다. VIP를 뛰어넘는 VVIP들은 쇼핑하는 방법도 다르다는 설명이다. 모델들이 입은 옷을 직접 만져보고 그 자리에서 주문도 할 수 있는 펜디의 ‘트렁크쇼(trunk show)’에는 극히 소수의 고객만 초청 받는다. 펜디 본사에서 재단사를 한국으로 보내 고객의 치수를 직접 재고 안감 재질이나 별도의 특별 주문(스페셜 오더)도 받는다. 올해로 5회째인 이 쇼에서는 아직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올해 생산된 모든 모피 샘플(60여 개)이 소개됐고, 현대백화점 본점에서 초청한 고객 30여 명이 이날 하루에만 총 7억 원을 썼다. 펜디 매장 매니저는 “평상시 백화점을 잘 방문하지 않는 고객들이 이 행사를 주로 이용한다”며 “구매 금액은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 해외 현지서 1인당 1억 원 넘는 보석 구입 샤넬 까르띠에 부쉐론 티파니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명품 주얼리 브랜드들은 몇몇 VVIP를 초청해 해외에서 주얼리 쇼를 연다. 주로 홍콩이나 일본, 이스탄불, 유럽 등의 유명 관광지에서 개최하며 쇼 참석에 드는 모든 비용을 브랜드 측에서 부담한다. 보통 3∼5일 일정으로 1인당 1000만 원 이상이 기본. 브랜드의 초청을 받아 국내에서 참석하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1∼3팀에 불과하다. 초청 대상은 각 브랜드의 한국 매장에서 관리하는 VVIP들이나 현대백화점의 최상위 VIP, 롯데백화점 에비뉴엘의 LVVIP(Limited Very Very Important Person), 신세계백화점의 최상위 VIP인 ‘트리니티’ 회원들이다. 때에 따라서는 특정 백화점 고객들만 지정하기도 한다. 이 같은 최상위 고객들은 백화점끼리 겹치는 경우를 감안해도 많아야 1000명 안팎이다. 이런 초청을 받은 VVIP들은 해외 고급 파티문화를 즐길 수 있고, 특별한 대접을 받으면서 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참석한다. 특히 쇼에서는 평소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제품은 물론 공방이나 주얼리 제작 현장 등도 직접 볼 수 있다. 이 고객들에게는 모든 쇼핑을 책임지는 ‘퍼스널 쇼퍼’도 따라 붙는다.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의 이은정 퍼스널 쇼퍼는 “고객마다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1인당 1억 원 이상의 주얼리를 현지에서 구입하는 것 같다”며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명품들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또 “상위 20% 고객들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VIP고객은 매우 중요하다”며 “이 가운데서도 VVIP들에게는 제품에 대한 최상의 서비스는 물론 문화·예술적 접근, 가족사까지 챙기는 접근 등 다양한 마케팅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퍼스널 쇼퍼가 성향-습관까지 챙겨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트리니티 고객인 최은영 씨(가명·49)는 본관 6층의 트리니티 라운지에서 퍼스널 쇼퍼의 도움을 받아 앉은 자리에서 쇼핑을 마친다. 퍼스널 쇼퍼는 사전에 최 씨의 취향을 파악해 여러 벌의 옷과 핸드백, 구두를 라운지에 비치한다. 최 씨처럼 백화점의 VVIP 고객들은 백화점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상품을 고르지 않고 백화점의 퍼스널 쇼퍼나 우수 고객을 전담하는 컨시어지(concierge)에게 취향을 얘기하면 끝이다. 라운지에는 옷을 입어볼 공간은 물론 TV 오디오 등 각종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다. 또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라운지의 경우 벽면에 유명 작가의 그림을 걸어 두고 고객이 마음에 들면 즉석에서 구입하도록 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현재 롯데백화점은 본점에서 3명, 신세계백화점은 본점과 부산 센텀시티점에 1명씩 총 2명의 퍼스널 쇼퍼가 근무하고 있다. VVIP 취향을 일일이 맞춰야 하기 때문에 일이 더 힘들 것 같지만, 퍼스널 쇼퍼들은 오히려 “평소 VVIP들의 취향과 성향은 물론 습관까지도 파악해 두고 있기 때문에 크게 까다롭지 않으며 가격에 구애받지 않아 어떤 면에서는 더 쉽다”고 말한다.
○ 명품 제작 너무 오래 걸려 체형이 변하기도 VVIP들은 제품을 주문하고 난 뒤 손에 쥐기까지 최소 6개월, 최대 2년까지 걸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때문에 특히 남성복의 경우 제품이 제작되는 동안 고객이 살이 찌는 등 체형이 바뀌어 옷을 입지 못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신동한 바이어는 “원래 에르메스는 VVIP들을 대상으로 남성복 사전 주문 제작을 받았지만, 제작기간이 너무 길어 문제가 생기다 보니 몇 년 전부터 사전 주문 제도를 없앴다”고 말했다. VVIP급은 아니더라도 VIP들 역시 명품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다. 이들에게는 ‘신규 오픈 매장을 노리라’는 원칙이 있다. 이 매장에는 기존 매장에는 없는 물건들이 대거 풀리기 때문. 지난해 대전 갤러리아백화점의 루이뷔통 매장 오픈 당시 국내 다른 매장에서 볼 수 없는 ‘네버풀’ 가방을 구입하려고 명품족들이 모여든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또 9월 신세계 영등포점의 루이뷔통 오픈 당시 ‘토탈리’ 가방을 사겠다며 줄을 선 것도 VIP급 수준의 정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