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의 기타리스트가 무대 위에서 연주하고 있다. 손으로는 기타를 치고 있지만, 머릿속은 각종 상념과 고뇌로 가득 차 있다. 노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누구는 화장실에 가고, 누구는 담배를 피우러 나간다. 심지어 공연 중인데도 서슴없이 일어나 자기들끼리 인사하고 집에 가버리기도 한다.
그나마 맨 앞줄에 앉아 관람 중인 소설가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무대를 노려보고 있고, 무대를 빌려준 연습실 주인 대진 형은 김밥을 꾸역꾸역 먹고 있다. 세 번째 곡이 끝났을 때, 기타리스트는 마이크 앞에 서서 말한다. “대진이 형, 그만 좀 먹어요.” 기타리스트는 슬프다. 이곳엔 열광이 없다. 이것이 록인가.
소설가 구경미 씨의 신작 소설집 ‘게으름을 죽여라’에 수록된 ‘뮤즈가 좋아’는 로커 지망생이자 엄밀한 의미에서 백수인 아마추어 기타리스트에 관한 이야기다. 2005년 첫 번째 소설집 ‘노는 인간’으로 국내 백수소설의 지평을 연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이처럼 주류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 이를 여럿 등장시킨다. 번듯한 직장도, 좋은 집도 없고 밝은 미래도 없는 청년들. 하지만 결코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작가는 정색하고 비관하기보다는 톡톡 튀는 소재, 노련한 블랙유머로 세태를 날카롭게 꼬집어 낸다. ‘뮤즈가 좋아’에도 이런 특색이 잘 드러난다.
록 음악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상경한 지 10년이 다 되어 깨달은 것은 프로밴드에 입성하기엔 보통 수준의 그저 그런 기타연주자에 불과하고, 인디밴드에 들어가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는 사실뿐. 결국 학원가가 아니면 갈 곳 없는 그는 아마추어 밴드 ‘무지’(영국의 록 밴드 ‘뮤즈’에서 영감을 받은 이름이다!) 멤버들과 학원 연습실에서 공연하며 기약 없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각종 오디션을 전전하며 겪는 숫한 굴욕들이 갈 곳 없는 청춘의 비애를 고조시키지만, 소설은 이런 현실까지도 결국 웃음으로 처리해 낸다. 작가는 백수 캐릭터가 주는 갈등과 유머를 세세히 묘사함으로써 비주류 인생들이 부대끼는 사회상을 에둘러서 보여준다.
‘독평사’ ‘게으름을 죽여라’도 범상치 않은 소재를 다룬 흥미로운 작품. 등장인물들은 역시 뚜렷한 직업이 없는 20대 중후반의 도시인들이다. ‘독평사’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사람들의 글에 대한 비평을 해주는 사람의 이야기다. 자기 글을 읽고 평을 달아주는 것에 돈을 지불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이 도시의 사람들이 혼자 수상한 일에 골몰하듯 끊임없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쓰는 사람에 비해 읽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듣는 사람은 없는 곳, 쌓인 이야기는 많지만 결코 소통하지 못하는 이 사회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표제작인 ‘게으름을 죽여라’는 스물여섯이 되도록 딱히 하는 일이 없는 주인공이 가족들의 강압으로 ‘게으름치료센터’에 입원하게 된 이야기다.
“그들은 게으르고 싶어서 게으른 게 아니었다. 뭘 하고 싶은지를 몰라서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어서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게으름치료센터에 입원한 다른 청년들을 보며 화자가 떠올리는 생각은 방향성을 상실한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방랑과 우울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웃기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현실이 소설집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