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이 좀 빠져도 호랑이는 호랑이다. 유창혁 9단의 명성을 익히 아는 안형준 2단은 백 22로 좌하 귀를 무난하게 처리하려고 한다. 이때 흑은 참고1도 1에 두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유 9단처럼 공격 본능을 가진 기사들은 평온한 타협보다 서로 쫓고 쫓기는 쪽에 마음이 끌린다.
흑 23으로 백의 의중을 떠본다. ‘굴복하겠느냐’라고. 이 수가 안 2단의 혈기를 자극한다. 서로 무난하게 가자고 하면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굴복을 강요한다면 가만있을 수 없다. 안 2단이 백 24, 26으로 끊자 반상엔 파열음이 일어난다. 여기서 한바탕 힘겨루기가 불가피하다.
흑 31로 내려선 수가 유 9단의 관록을 보여준다. 백이 혈기를 참지 못하고 참고2도 백 1, 3으로 반발하면 흑 4, 6이 준비돼 있다. 흑 16까지 패가 나는데 백에겐 팻감이 없어 귀의 백이 고스란히 잡힌다. 백 32로 참는 것이 정수.
백으로서 기분 좋은 수는 백 40. 이 수 때문에 백 24, 26으로 나와 끊는 변화를 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흑의 근거를 빼앗으며 실리도 얻었다. 백 44까지 어지러운 공중전이 시작됐다. 공중전에서의 활약은 과거 유 9단의 장기였는데 안 2단도 신형전투기의 위력을 보여주겠다며 벼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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