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건축을 말한다]<1>조병수의 양평 ‘땅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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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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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조병수 씨는 경기 양평군의 ‘땅 집’에 ‘윤동주의 하늘과 땅과 별을 기리는 집’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그는 이곳에서 해마다 두 번씩 친구들과 함께 시 낭송회와 음악회를 열 계획이다. 사진 제공 조병수건축연구소
건축가 조병수 씨는 경기 양평군의 ‘땅 집’에 ‘윤동주의 하늘과 땅과 별을 기리는 집’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그는 이곳에서 해마다 두 번씩 친구들과 함께 시 낭송회와 음악회를 열 계획이다. 사진 제공 조병수건축연구소

“집도 언제든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게”


《외국 건축가들이 점령한 듯한 이 땅 위에서 묵묵히 한국의 건축을 다듬고 있는 우리 건축가들이 있다.
한국의 공간 이야기는 이방에서 건너온 화려한 디자인이 아니라 자기만의 독창적 색깔을 만들어 온 이들에게서 찾아야 한다.
오늘의 한국 건축을 이끄는 중견 건축가들을 만나 그들이 쌓아온 인생이 공간을 위한 고민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살펴본다.》

직사각형 구덩이에 들어앉은 집 사람은 더 큰 하늘과 만나게 돼
기능 부족한 건물은 고치지만 땅을 잘못 해석하면 처치곤란


24일 오전 경기 양평군 지제면 수곡2리. 산등성이를 따라 허름한 농가와 깔끔한 별장이 뒤섞여 늘어선 땅에 32m² 넓이의 ‘구덩이 건축물’ 한 채가 있다. 위로 솟은 건물들 사이에서 홀로 움푹 밑으로 꺼진 공간. 건축가 조병수 씨(52·조병수건축연구소 대표)가 설계해 2월 완공한 ‘땅 집’이다.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콘크리트 평지붕과 내려가는 계단뿐이다. 서재와 2개의 명상실은 지면 3m 아래에 있다. 반듯하게 파낸 직사각형 구덩이 사방으로 흙벽을 다진 뒤 콘크리트 벽체를 세우고 표면에 잣나무 조각을 붙였다. 시골 흙 마당과 나무대청을 가지런히 땅 밑으로 ‘내려 앉혀’ 담은 모습이다. 나무차양 밑 마당에는 빗물 자국이 길게 패어 있다.

이 집은 조 씨가 추구하는 건축적 이상을 고스란히 녹여 만든 개인 공간이다. 대학원 졸업 작품으로 구상한 땅 밑 공간의 이미지를 쉰이 넘어 실물로 구현했다.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대학원 시절 ‘왜 자꾸 땅을 파고 들어가 묻히려 하느냐’고 교수님들께서 많이 혼내셨는데 결국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며 웃었다.

“노자의 도덕경을 읽으며 하늘과 땅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던 무렵 구상했어요. 몸을 땅속에 두는 공간이지만 거기 머무는 사람이 마주하는 것은 더 크고 고즈넉해 보이는 하늘입니다. ‘땅 집’이 곧 ‘하늘 집’인 것이죠.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머물던 시골 친척집 마당의 기억이 스며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언제든 다시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물입니다.”

조 씨는 미국 몬태나주립대와 하버드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몬태나주립대 등에서 교수로 일했다. 자연을 배경으로 쓰는 데 머물지 않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건축 스타일을 추구해 이름을 알렸다. 2008년 경기 양주시 아름솔유치원 설계로 한국건축가협회장상을 받았다. 그는 “지금은 건축이 삶이 전부지만 어릴 때부터 관심을 둔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림을 그릴 때가 제일 즐거웠어요. 미술을 공부하려고 마음먹었다가 우연히 어떤 작품을 보고 ‘나는 죽어도 저렇게 못 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습니다. 건축도 비슷한 이유로 포기하려 한 때가 있었는데, 또 그런 식이라면 결국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서 계속했죠. 뭐든 ‘적당히 무식’해야 겁 없이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웃음)”

강원 화천의 소설가 이외수 씨 집필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사간갤러리에서도 조 씨는 땅이 가진 고유의 가치를 단순한 조형 요소를 통해 뽑아내는 스타일을 꾸준히 유지했다. 하지만 그는 “스타일이 바뀌는 사이클이 길어지면서 고지식한 중년 아저씨가 되어가는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내년 11월 완공 예정인 종로구 중학동 ‘트윈트리 프로젝트’에 사용한 부정형 곡면에는 스스로의 안주에 대한 경계도 담겨 있다.

“물론 건물 형태는 주변 환경과 대지에서 얻은 것입니다. 최근 찾아볼 수 있는 건축의 문제는 공간의 기능적인 부실함이 아니에요. 건물이 애초부터 땅을 잘못 해석한 데서 혼란이 생긴다고 봅니다. 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물을 알아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출입구 위치가 쓰기 어색하고 동선의 흐름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면 일단 의심해볼 만하죠.”

기능적으로 부족함이 있는 건물은 쓰다가 조금 고치면 좋아질 수 있다. 그러나 땅을 잘못 해석하고 앉힌 건물은 처치 곤란한 골칫덩이가 되기 쉽다. 조 씨는 “건물이 거기 있음으로 인해 주변의 자연과 다른 건물, 지나는 행인의 상황을 더 좋게 만드는 ‘사회적 건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외따로 홀로 선 듯한 건물이라도 땅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 맞닿은 대지를 건물이 더 좋게 만들었는가. 모든 고민은 거기서 출발하죠. 땅이 이미 가진 조건을 정성들여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건물의 재료와 모양 등에 대한 답을 거의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과 독일을 오가며 활동해온 조 씨는 “앞으로는 한국 안에서 활동에 더 집중하려 한다”고 말했다. 땅에 대한 고민보다 건물의 면적이나 자산가치의 고려가 앞섰던 시절은 끝났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장의 모습만 살펴보면 안타까운 모양새가 왜 없겠어요. 하지만 선진국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우리가 외국의 좋은 건물을 자꾸 부러워하는 것은 멋진 사진만 가려 뽑아 실은 책을 읽기 때문이라니까요.(웃음)”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변영욱 기자
변영욱 기자
●조병수 대표는
△1986년 미국 몬태나주립대 건축학과 졸업 △1991년 하버드대 건축학·도시설계학 석사 △1994년 조병수건축연구소 대표 △1999∼2005년 몬태나주립대 교수 △2004년 미국 건축전문지 ‘아키텍처럴 레코드’ 선정 세계의 건축가 11인 △2005(카메라타 음악실), 2008년(아름솔유치원) 한국건축가협회장상 △2009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주제전 ‘집’ 책임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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