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계절 11월은 햄릿의 계절이기도 하다. 11월 무대를 잇달아 장식할 세 가지 색깔 햄릿을 통해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깊은 사색에 젖어보는 것은 어떨까. 극단 여행자의 ‘햄릿’(10월 30일∼11월 8일)과 연희단거리패의 ‘햄릿’(11월 5∼22일), 그리고 이탈리아 폰테데라 극단의 ‘햄릿-육신의 고요’(11월 14, 15일)다.
양정웅 연출이 이끄는 극단 여행자는 한국의 도깨비설화를 접목한 ‘한여름 밤의 꿈’으로 2006년 폴란드 그단스크 국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서양고전 연극을 동양적 상상으로 새롭게 풀어내는 연출 스타일로 주목받아왔다.
이 극단이 다시 한 번 세계 무대를 겨냥해 기획한 ‘햄릿’의 키워드는 ‘굿’이다. 양 연출은 “‘햄릿’에 등장하는 유령(억울하게 살해된 햄릿의 아버지)의 존재감이 와 닿지 않아 죽은 영혼이 무당의 몸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을 생각해냈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적 샤머니즘과 햄릿의 만남이란 구상으로 발전했다.
명동예술극장에서 펼쳐질 연극에선 세 종류의 한국 전통 굿이 등장한다. 햄릿이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는 진오기굿을 펼치다 아버지의 넋과 접신한 무당을 통해 그 죽음의 진실을 전해 듣는 장면이 첫째다. 둘째는 물에 빠져 죽은 오필리어의 영혼을 위무하기 위해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는 수망굿을 펼치는 장면이다. 마지막은 독이 묻은 검에 찔려 죽어가는 햄릿을 위한 굿이다. 여기에선 죽음을 앞둔 이를 위해 미리 진오기굿을 펼치는 산진오기굿이 행해진다.
연희단거리패의 ‘햄릿’은 그 삼촌뻘이라 할 만하다. 1996년 연희단거리패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으로 초연된 이 작품은 영남 춤의 고유한 몸짓과 한국 전통의 악가무를 접목해 ‘가장 한국적인 햄릿’으로 각광받아왔다. 특히 햄릿이 아버지의 독살 가능성을 광대들의 연극으로 보여주는 장면에선 한국 전통의 탈놀이와 사물놀이를 접목해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번 공연은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새로 지은 눈빛극장(300석 규모) 개관 기념공연이면서 내년 4월 루마니아에서 열릴 제7회 국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공식 초청공연의 전초전이기도 하다. 이 페스티벌에는 미국의 로버트 윌슨, 독일의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러시아의 유리 부투소프, 리투아니아의 오스카라스 코르슈노바스 등 세계적 연출가의 ‘햄릿’이 한자리에 모인다. 이윤택 연출은 가장 권위 있는 셰익스피어 전집으로 꼽히는 아든 판 ‘햄릿’을 완역해 원작에 더욱 충실한 작품으로 가다듬었다.
2009 이탈리아 비평가상을 수상한 ‘햄릿-육신의 고요’는 햄릿의 실제 무대였던 중세 유럽의 독특한 분위기와 세련된 현대적 무대 연출을 함께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출연 배우 전원이 중세 기사들의 펜싱 복장으로 등장하며, 독특한 투구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철제 구조물 등의 오브제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햄릿의 사유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압축된 대사들 사이에서 긴 침묵과 철제 구조물의 삐걱대는 소음이 충돌하면서 묘한 철학적 울림을 만들어 낸다고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김철리 예술감독은 설명했다. 연출가 로베르토 바치는 햄릿을 소재로 이 작품 외의 ‘전혀 다른’ 햄릿을 발표할 만큼 이 작품에 대한 다층적 해석으로 인정받고 있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단 이틀만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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