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군 천향리 석평마을에는 석송령(石松靈)이라는 노송이 있다. 600여 년 전 큰 홍수에 떠내려 온 것을 마을 사람들이 건져 올려 심은 것으로 전해온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이 나무에 제를 올린다. 일제강점기 때 한 주민이 ‘석평마을의 영험 있는 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러곤 이 나무 앞으로 자신의 땅까지 물려주었다. 석송령은 토지에서 나오는 사용료를 모아 장학금을 주고 있다. 참으로 후덕한 나무와 마을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 294호.
‘한국의 자연유산’은 식물 노거수, 식물 희귀종, 식물 자생지, 동물 종과 번식지, 동물 도래지, 동굴과 암석 등 아름답고 소중한 천연기념물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조경학과 교수. 한국 천연기념물 제도의 의미와 역사, 천연기념물 지정과 해제 및 보호 과정, 지정 기준 등 천연기념물에 관한 정보를 소개한다.
가장 흥미를 끄는 대목은 역시 천연기념물에 얽힌 이야기들. 예천 석송령처럼 노거수의 사연이 특히 더 감동적이다. 한 곳을 지키며 수백 년 동안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왔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수세(樹勢)가 나빠지고 있는 충북 보은의 정2품송(천연기념물 103호). 이 나무는 후계목을 육성하기 위해 부인을 여럿 맞아야 했다. 정2품송과 인공수분을 한 강원 삼척시 준경묘의 미인송이나 보은군 서원리의 소나무는 이런 까닭에 ‘정부인송’으로 불린다.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는 사연도 애틋하다. 자연재해로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지거나 저절로 고사해 해제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무태장어는 독특하다. 무태장어는 필리핀 등지에서 알을 낳는 열대성 어종. 희귀종이던 무태장어였는데 동남아시아에서 식용으로 수입되면서 그 수가 늘어나고 관리가 불가능해지자 천연기념물에서 해제한 것이다.
경북 문경시 존도리 소나무는 고사하면서 2006년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됐다. 주민들과 정부는 이 나무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기리기 위해 대전 천연기념물센터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최근 존도리 주민 60여 명이 센터를 찾아 나무를 위한 진혼제를 올렸다.
멸종 위기에 처해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인 황새(199호), 따오기(198호), 반달가슴곰(329호)의 이야기는 훼손된 자연환경을 원래대로 되살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를 보여주며 우리를 반성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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