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혁 9단은 백 30을 본 순간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을 것이다. 이렇게 밖으로 탈출하는 수가 있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이 수를 알았더라면 흑 ○로는 이쪽을 보강했을 것이다.
백 30을 당한 이상 백약이 무효다. 직접 응수하는 수는 안 되기 때문에 흑 31로 보강부터 하는데 유 9단의 손길에 힘이 없다.
서둘러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백 32로 후진하는 게 냉정 침착한 수. 천재일우로 잡은 기회라 흥분할 만도 한데 신인답지 않게 흐름을 꿰뚫고 있다.
양단수를 방치하고 둔 백 138이 흑의 연결을 차단하는 결정타. 이로써 좌변 흑 일단의 탈출구는 봉쇄됐다.
이후로는 흑이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흑 145로 참고도 흑 1에 두는 것은 백2, 4로 환격에 걸린다. 이렇게 좌변 백이 살아가면 좌변 흑은 수상전도 못하고 잡힌 모습.
결국 유 9단은 백 146을 보자 돌을 거뒀다. 허망하다. 나이 들면 막판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아직 젊은 기사들보다 수읽기나 형세판단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신하는데…. 불리해도 끈기 있게 따라붙어 기어코 역전을 일궈내는 젊은 기사들이 두렵다. 유 9단은 “하긴 나도 젊을 때 그랬지”라고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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