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만에 신작 ‘구월의 이틀’ 펴낸 장정일 씨
예술은 위조지폐… 패배자의 몫
젊은이들 왜 문학으로 빠지나
요즘 대학생 너무 주눅 들어
청춘 어떻게 보낼지 고민을
10년 만에 신작소설을 발표한 소설가 장정일 씨. 저항과 해체의 실험적 소설을 썼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기존의 성장소설과 궤를 달리하는 새로운 내용을 선보였다. 홍진환 기자
‘아담이 눈 뜰 때’ ‘내게 거짓말을 해봐’ 등 기존의 가치체계와 소설문법에 저항하는 실험적 작품을 발표해 온 소설가 장정일 씨(47). 그가 10년 만에 신작 ‘구월의 이틀’(랜덤하우스)을 펴냈다. 노무현 정권의 탄핵정국 시기를 배경으로 대학생 ‘금’과 ‘은’이 각각 좌파, 우파 청년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4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지금까지의 성장소설을 한번 뒤집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치색과 세태풍자적 특성이 강한 작품을 발표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기본적으로는 ‘성장소설’이다. 물론 기존의 성장소설과는 다르다. 지금까지 우리 문학사에서 수십 년간 반복된 성장소설은 대부분 좌파 청년의 일대기이자 예술가 소설이었다. 이런 전통을 뒤집고 우파 청년의 성장기를 다뤄보고 싶었다. 또한 글자가 생긴 이래 성장소설은 이도령이 춘향을 만나고,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나는, 천편일률적인 ‘남자, 여자 찾기 게임’이지 않았나. 소설에서 은은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억압하며 방황한다. 양성애적 가능성이 잠재적으로 열린 현실을 반영한 새로운 성장소설을 쓰려고 했다.”
―‘은’이라는 ‘우파 청년의 탄생기’를 다루면서 출신지역, 집안배경과 이념 등 모든 면에서 대조되는 친구 ‘금’을 비슷한 비중으로 등장시킨 이유는….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보좌관이었던 아버지를 둔 금은 그 자체로 전형적인 1980∼90년대 좌파를 상징한다. 너무 많이 이야기되어 더 할 이야기가 없는 존재지만 은과 대치시키기 위해 필요했다. 옛날식이라면 금이 주인공이다. 그는 정치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문학을 택한다. 하지만 나는 젊은이들이 문학으로 자꾸 빠져나가는 것은 약하고 불길한 것이라고 본다. 물질과 권력, 현실에 맞닥뜨리면서 자아를 실현하는 성장소설도 나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은은 예술의 속성을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은 위조지폐이며, 패배한 자들의 몫이다. 언제까지 우는 소리만 하고 있을 건가.”
―옛 우익이나 뉴라이트에 대해 비판적인데 ‘은’이라는 청년 우익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엘리트주의를 바탕으로 하지만 전통과 사회에 헌신하는 열정이 필요한 것이 우익이다. 선비를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상대를 좌익으로 낙인찍거나 편 가르기를 하는 등 기존의 원죄에서 자유롭지 않은 옛 우익에선 별 기대할 게 없다. 기성세대에게서 크게 배울 바가 없는 것은 좌파도 마찬가지다. 은과 금이 모두 고아가 되는 걸로 설정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은은 자기 계발의 능력과 반성 능력을 갖췄다. 그런데 현실의 우파 청년들은 글쎄….”
―‘은’이란 청년에게서 때때로 이중성과 야비한 면모, 체제나 강한 것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맹신이 드러난다. 희화화하려는 의도인가.
“잘못된 우파에 대해서는 비난하고 있지만 우파를 욕하자는 것도,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자는 것도 아니다. 좌파가 맡고 있는 비판자 역할을 존중하자는 것이다. 그럴 줄 아는 것이 강한 우파다.”
―젊은 세대가 이 책을 어떻게 읽었으면 하는가.
“대학생들이 너무 주눅 들어있다. 인생에서 청춘은 오직 대학시절뿐이다. 그 시기는 ‘청춘의 이틀’이다. 할 일은 두 가지밖에 없다. 죽도록 공부하거나 죽도록 노는 것. 아르바이트도 할 필요 없다. 대학생은 가난한 게 당연하니까. 정치적 내용이 부각되긴 했지만 청춘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인생의 스승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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