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음악 - 무대연출 뛰어나 안중근 내면묘사는 부족… 뮤지컬 ‘영웅’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5일 03시 00분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에서 재판받는 장면. 안중근 역의 정성화가 이토의 죄를 하나하나 거명하자 방청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누가 죄인인가’를 노래한다. 사진 제공 에이콤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에서 재판받는 장면. 안중근 역의 정성화가 이토의 죄를 하나하나 거명하자 방청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누가 죄인인가’를 노래한다. 사진 제공 에이콤
올해 발표된 창작뮤지컬 중에서 음악적 완성도가 가장 뛰어나다. 음악이 귀에 착착 감긴다는 뜻이 아니다. 뮤지컬의 생명인 음악이 도입-전개-변주-절정의 독립적 흐름을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뜻에서 그렇다.

국내 창작뮤지컬은 음악이 좋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겨 장면 장면에 충실한 음악은 만들어 내면서도 기이하게도 그것을 하나의 음악으로 완결하는 데는 대부분 소홀한 모습을 보여 왔다. 이 때문에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데 몇 편의 뮤직비디오를 연달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올해 100주년을 맞은 안중근 의거일(10월 26일)에 맞춰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영웅’(한아름 작, 윤호진 연출)은 그런 점에서 뮤지컬의 기본기에 충실했다. 이 작품에서 뮤지컬 작곡가로 데뷔한 오상준의 음악은 안중근의 주제곡인 ‘장부가’와 전체 주제곡인 ‘그날을 기약하며’ 등 주요 장면에서도 빛을 발하지만 극 전체를 통일되고 안정적으로 끌고 간 뒷심도 뛰어났다. 피터 케이시의 세련된 편곡도 큰 몫을 했다. 반주부가 라이브연주가 아니란 점은 옥에 티다. 눈발을 맞으며 달리는 기차의 영상과 무대 위의 기차를 빈틈없이 바꿔치는 무대연출도 볼만하다. 블라디보스토크와 하얼빈의 서양식 건물에 무대 위 기둥과 겹겹의 이동막을 사용해 입체적인 느낌을 부여한 박동우의 무대디자인도, 일경과 독립군이 쫓고 쫓기는 추격 장면을 역동적 군무로 형상화한 이란영의 안무도 인상적이다.

아쉬운 점은 그 역사적 무게에 짓눌린 탓인지 안중근의 의거는 보여도 인간 안중근이 보이지 않는 점이다. 극은 ‘동양의 사자’라 할 이토 히로부미(이희정 조승룡)와 그를 일격에 쓰러뜨린 ‘한국의 호랑이’ 안중근(류정한 정성화)의 대립구조로 펼쳐진다. 그러나 일본 근대화의 영웅으로서 이토는 야망과 회한에 젖은 인간적인 존재로 그려진 반면 안중근은 동상처럼 느껴질 정도로 딱딱하다. 안중근의 내면을 감히 들여다볼 생각을 못한 바람에 웃음이나 눈물뿐 아니라 애증과 번민의 음영을 충분히 만들어 내지 못한 결과다. 민족영웅이 보편적 영웅으로 승화되기 위해선 이순신이 그랬듯이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적 과정이 필요하다. ‘영웅’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안중근이 정(正)의 영웅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배우를 놓고 볼 때 류정한의 안중근이 차갑다면 정성화의 안중근은 뜨겁다. 차가운 안중근은 이토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에서 이토의 죄목을 하나씩 낭독할 때 짜릿한 쾌감을 안겨준다. 뜨거운 안중근은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민경옥)가 보내온 수의 앞에서 오열할 때 진한 감동을 끌어낸다. 12월 31일까지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 1588-7890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동영상 제공: 에이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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