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가난하지만 티없는 아이들 “난 커서 뭐가 될까?”

  • Array
  • 입력 2009년 11월 7일 03시 00분


◇ 밈모, 니네 아빠도 가난하냐?/마르체로 도르타 엮음·천종태 옮김/158쪽·9000원·수린재

이 책은 아이들의 작문 숙제를 모은 것이다. 1990년대 초 이탈리아 나폴리 인근의 빈민촌인 아르자노의 초등학생들이 쓴 글을 교사가 엮었다. 가난하지만 티 없이 맑은 아이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때로는 잔잔한, 때로는 찡한 감동을 준다.

엄마는 심각한 존재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희생만 하신다. 우리를 위해서 젖을 만든다.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 젖이 나오는데, 그건 엄마가 ‘젖먹이동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조금 크면 젖이 안 나온다. 하지만 동생이 태어나자마자 금방 또 나온다. 엄마는 중학교 입학 자격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청소부도 못된다고 말하신다. 그래서 나는 골목에 있는 청소부 아저씨에게 무슨 학위가 있는지 살짝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나한테 말했다. “이런 싸가지 없는 놈, 남 간섭 말고 너나 잘해.”

우리 담임선생님은 다른 여선생님과 사이가 안 좋다. 여자 선생님들은 큰 소리로 떠들고 자기가 최고인 것처럼 잘난 체를 하는데, 나이 많은 선생님일수록 더 그렇다. 그분들은 복도에서 담배나 피우고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기 아르자노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씻지 않아서 더럽다. 아파트는 지진으로 무너졌다. 남은 건 쓰레기와 마약 주사기뿐이다. 내 친구는 쓰레기를 뒤지다 학교에 오는데 머리에 이가 있다. 동네 술집 문 밖에는 젊은 청년들이 아무렇게나 누워있다.

집이 어려워 일찍 일을 시작했다. 학교 뒤에 있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을 한다. 일주일에 3만 리라(약 2만 원)를 주는데 돈벌이가 그리 나쁘지 않다. 다른 아이들은 일주일에 2만 리라밖에 못 받는다. 이담에 크면 나도 정비소에서 일하고 싶다.

내 마음은 따뜻하다. 마약 중독자를 보면 나는 마음이 아프다. 무섭기도 하다. 그래도 한번은 내 주머니 안에 500리라 동전이 있어서 땅 위에 누워 잠자는 아저씨에게 돈을 내던지고 냅다 도망을 쳤다. 때때로 나는 마약 중독자 아저씨들에게 돈을 준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