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764>晉文公은 譎而不正하고 齊桓公은 正而不譎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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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9일 03시 00분


晉나라 文公과 齊나라 桓公은 모두 춘추시대의 覇者(패자)이다. 그들은 諸侯(제후)들이 동맹할 때 盟主(맹주)가 되고 주나라 왕실을 도와 천하를 안정시켰다. 공자는 두 사람을 비교하여 문공은 謀略(모략)이 많았던 반면에 환공은 正道를 밟았다고 논평했다. ‘논어’ ‘憲問(헌문)’의 이 章(장)에 나온다. 譎은 속일 詐(사)와 같으니, 權謀術數(권모술수)로 사람을 속이는 일이다.

맹자는 “仲尼(중니·공자)의 무리는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朱子(주자)는 환공도 문공도 무력을 쓰면서 仁(인)을 빌려왔으므로 마음이 본래 不正하다고 규정했다. 다만 환공은 楚(초)나라를 칠 때 의리를 따르고 속임수를 쓰지 않았으나 문공은 衛(위)나라를 치면서 초나라를 빼앗아 음모로 승리한 차이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약용에 따르면, 공자는 환공이 마음 씀씀이나 행사에서 속임수를 쓰지 않고 정도를 지켰기에 문공과 다르다고 선명하게 구별했다.

제나라 환공은 형 公子糾(공자규)와 싸워 이긴 후 제나라 군주가 되어 管仲(관중)을 재상으로 삼아 國威(국위)를 떨쳤다. 진나라 문공 重耳(중이)는 내란을 피해 19년간이나 망명해 있다가 본국으로 돌아가 즉위한 후 城복(성복)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國勢(국세)를 펼쳤다. 그런데 환공은 천자의 명령을 공손하게 받들었으나 문공은 당돌하게 천자의 의례인 墓道(묘도) 제도를 청했다. 또 환공은 管仲과 원수였지만 그를 사면하고 등용했으나 문공은 狐偃(호언)의 은혜를 입고도 그를 내쳤다. 이 사실들만 보아도 환공과 문공은 사람됨이 달랐다. 현실 정치와 국제 정세를 바라보는 공자의 시선은 늘 냉철하다. 냉철한 시선을 우리는 배워야 하리라.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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