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부엌에서 무쇠 솥을 덮어 놓는 나무판을 몰래 가져다 무언가를 판각한 어린 소년이 있었다. 그의 집념은 평생을 한결같이 이어져 40년 넘는 목판 작업으로 열매를 맺는다. 그 목판화 외길의 궤적을 되짚는 전시가 마련됐다. 22일까지 경기 파주시 예술마을 헤이리의 갤러리 한길(031-955-2094)에서 열리는 김상구 씨(64)의 ‘자연으로, 나무를 닮아가다’전.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노동집약적 판화, 그중에서도 나무로 하는 작업만 파고들었다. ‘자로 잰 듯한 것보다는 약간 휘어진 대들보와 같은 것, 화려한 것보다는 투박한 것, 가득 차 있는 것보다는 여백이 있는 것’을 추구하는 작가답게 전시장에는 나무와 새, 꽃과 물고기, 풍경이 정답게 어우러지며 분주한 마음에 ‘쉼표’를 찍게 한다.
순수미술로서 판화의 다양한 형식 실험과 더불어 책 표지 등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개척하고, 전통적 개념의 현대적 변용에 힘을 쏟아온 한국 목판화의 대표 작가. 그는 “지속적 작업의 실행이야말로 나 스스로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언어다. 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진정으로 감상한다면 나는 영원토록 그 무대에 서리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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