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숙문자의 가신인 대부 선이 (공숙문자의 추천으로) 공숙문자와 더불어서 함께 조정에 오른 일이 있었는데, 공자가 그 일을 듣고서 공숙문자는 文의 시호를 받을 만했다고 했다.
‘논어’ ‘憲問(헌문)’의 이 章에서 공자는 인재를 천거하는 도량에 대해 말하였다. 公叔文子는 衛(위)나라 대부 公叔拔(공숙발)인데 죽은 뒤 군주에게서 ‘文’의 諡號(시호)를 받았다. ‘예기’에 보면 공숙문자가 죽자 아들이 군주에게 시호를 청했다. 위나라 군주는 “이분은 우리 조정의 일을 볼 때 職制(직제)를 정비하고 이웃나라와 교유할 때 우리 社稷(사직)에 욕을 끼치지 않았으니 文의 덕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분을 貞惠文子(정혜문자)로 하라”고 했다. 文은 도리에 부합해서 아름다운 덕을 이룬 것을 말한다.
그런데 생전에 공숙문자는 자신의 家臣인 z을 자신과 같은 지위의 大夫로 추천했다. 臣大夫z은 ‘가신이었다가 나중에 대부가 된 선’이란 말이다. 諸(저)는 之於 즉 ‘그를 ∼에’의 뜻이다. 公은 公朝(공조) 즉 제후의 조정을 말한다. 당시 위나라 제후는 魯公(노공)이었다. 子聞之는 ‘공자께서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듣고서’라는 뜻이다.
옛 사람은 공숙문자가 자기의 가신을 조정에 천거해서 자기와 함께 국정을 돕도록 한 일을 두고, 사람을 알아보고 자기를 잊은 데다 군주를 제대로 섬기는 三善(삼선)을 실천했다고 평했다. 사람은 대개 자존심이 강해서 後進(후진)이 자기보다 功名(공명)을 이루는 일을 두려워하고 자기 재능과 비슷한 무리와 同列(동렬)에 서기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집단이 발전하려면 윗사람이 남의 재덕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心好才德(심호재덕)의 자세, 거칠고 더러운 것까지 감쌀 정도로 남을 포용하는 包荒(포황)의 태도를 지녀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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