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이 한편의 소설이 시인의 가슴에 들어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6일 03시 00분


이인성의 ‘한없이 낮은 숨결’, 이청준의 ‘축제’, 카프카의 ‘성(城)’,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국적을 넘나드는 이 소설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각각의 서사에서 영감을 얻은 우리 시인들에 의해 시로 변용 및 재창조됐다는 점이다. 계간 ‘시인세계’는 최근호에서 정진규 김혜순 문인수 나희덕 김경주 시인 등 14인의 시인에게 작품활동에 영향을 준 소설에 대해 묻는 기획특집 ‘내 시 속에 들어온 소설’을 실었다. 시인들에게 영감을 준 소설작품과 그 작품이 실제로 반영돼 탄생한 시를 비교해볼 수 있다.

가장 많은 시인이 언급한 작가는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가인 카프카였다. 이건청 김광규 박형준 시인이 모두 자신들의 시작활동과 문학세계에 미친 카프카의 영향력을 말한다. 세상의 부조리와 삶의 불가해성을 미로와 수수께끼 같은 작품들로 형상화한 카프카의 작품에서 시인들은 세계에 대한 ‘반성과 성찰’, ‘부정적 초월’ 등을 발견했다.

카프카의 ‘성(城)’을 읽고 김광규 시인은 ‘가을날’을, 박형준 시인은 ‘성(城)에서’ 연작을 썼다. 스스로를 “카프카의 숭배자”라고 칭하는 이건청 시인은 카프카의 소설 ‘굶는 광대’의 핵심 줄거리를 모티브로 한 시 ‘정직한 시인’을 발표했다.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딛고 선 광대의 운명 속에서 각질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을 찾아 제시하고자 하였고 나아가 시인이 서야 할 바른 자리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드러내보고자 했다”고 말한다.

지난해 타계한 소설가 이청준의 작품도 시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재무 시인은 고인의 소설 ‘새와 나무’를 읽고 “시인이란…천형의 운명을 타고난, 불우를 지복으로 삼는 존재”란 생각에서 동명의 시를 발표했다. 때로는 시와 소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화작용하기도 한다. 정진규 시인은 절친한 후배였던 이청준 작가가 들려준 병든 노모의 이야기에 시 ‘눈물’을 썼고, 이청준 작가는 소설 ‘축제’에서 이 작품을 다시 인용했다. 정 시인은 “이 대목이 들어있는 이청준의 소설 ‘축제’와 인용된 시 ‘눈물’이 들어있는 나의 시집 ‘알시’를 나는 어깨동무로 나의 서가에 오늘도 나란히 꽂아두고 있다”고 말했다.

천양희 시인은 소설가 양귀자의 ‘숨은 꽃’을 읽고 얻은 깨달음을 시 ‘산행’을 통해 형상화했음을 고백한다. 시인은 “수많은 소설을 읽고 감동했지만 내 속에 우물 하나 품는 것, 그것이 시의 마음으로 무장한 것이라고 일러준 소설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김경주 시인은 장 필립 투생의 ‘욕조’를, 김언 시인은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사요나라, 갱들이여’ 등을 꼽았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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