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로가 군주 섬기는 도리에 대해 묻자, 공자는 ‘속이지 말 것이며 直諫(직간)하라’고 했다.
군주가 싫어하는 안색을 짓는데도 불구하고 直諫하는 것을 犯顔色(범안색)이라고 한다. 줄이면 犯顔(범안)이다. 司馬遷(사마천)은 漢(한)나라 文帝(문제) 때 袁앙(원앙)이란 인물이 犯顔色하면서까지 主義主張(주의주장)을 폈으므로 ‘史記(사기)’에 傳(전)을 세운다고 했다.
‘논어’의 ‘憲問(헌문)’에서 공자는 제자 子路가 事君 즉 군주 섬기는 도리에 대해 묻자 속이지 말고, 犯顔(범안)하면서까지 直諫하도록 가르쳤다. 이를 勿欺犯(물기범)의 가르침이라 한다. 勿欺也는 속이지 말라, 而는 ‘그리고’다. 犯之가 곧 犯顔이다.
漢(한)나라 文帝(문제)는 아우인 淮南王(회남왕) 劉長(유장)의 위세를 꺾으려고 그를 蜀(촉) 땅으로 유배 보내려 했는데, 원앙은 “회남왕이 도중에 죽으면 폐하께서는 아우를 죽였다는 나쁜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諫(간)했다. 문제가 마음을 바꾸지 않았으므로 회남왕은 분해서 굶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한번은 문제가 上林苑(상림원)에 행차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愼夫人(신부인)을 황후와 나란히 앉게 했다. 원앙은 “尊卑(존비)의 次序(차서)를 지키면 위아래가 화합하지만, 첩이 황후와 자리를 나란히 하면 앙화를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라고 諫(간)했다. 문제와 신부인은 간언을 받아들였다.
조선 광해군 때 鄭蘊(정온)은 상소를 하여, 영창대군을 죽인 강화 부사를 처벌하고 인목대비를 폐위시켜서는 안 된다고 격렬하게 주장했다. 勿欺犯의 가르침을 실천한 셈이다. 정온은 인조반정이 일어나기까지 제주도에 유배됐지만 선비들은 그의 기개를 칭송했다. 윗사람을 속이지 말고 윗사람의 안색을 살피지 말고 직간하라는 勿欺犯의 가르침은 오늘날의 조직사회에서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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