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나는/밤하늘에 뚫린 작은 벌레구멍이라고 생각했다//그 구멍으로/몸 잃은 영혼들이 빛을 보고 몰려드는 날벌레처럼 날아가/이 세상을 빠져나가는 것이라고/…/비좁은 그 틈을 지나/광막한 저 세상으로 날아간 영혼은/무엇을 보게 될까//깊은 밤 귀기울이면/사각사각/달벌레들이 밤하늘의 구멍을 갉아먹는 소리가 들린다.’(‘달이 나를 기다린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 씨가 다섯 번째 시집 ‘사랑의 어두운 저편’을 펴냈다. 죽음, 고독의 색채가 드리운 시편들 속에 ‘당신’을 향한 연가가 녹아들었다. 시집 전체를 흐르는 밤과 달빛 등이 환기시키는 이미지는 우울하면서도 몽환적이다.
‘내 가슴 속 심장이 있는 자리에서 두근대고 있는 달/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갈 때마다/달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내 가슴 속에서 커졌다 줄어든다/…/이지러진 모습의 달이 허공에 떠있다/아주 조금씩 숨을 쉬면서/밤하늘을 떠도는 내 심장 한 조각’(‘검은 달’)
‘고백’ ‘달의 연인들’ 등에서는 ‘당신’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의 기척들도 엿보인다.
‘해 지는 서역을 향해 걸었습니다/흙먼지 자욱이 이는 길/사랑하는 이여, 그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아무리 걸어도 설산은 가까워지지 않고/길가 유곽에서 흘러나온 작부들의 낭자한 노랫가락만/처마 밑에 내걸린 빛바랜 연등을 바스러뜨리며 퍼져나갔습니다/좀먹은 경전 펼쳐들어도 고원을 지나 내가 가야할 길은 한이 없고/문득 꽃향기가 난다 싶어 고개를 들면 아득한 벼랑이었습니다.’(‘비단길’)
추천사를 쓴 나희덕 시인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심연을 줄곧 탐색해 왔던 시인의 시선은 달의 어두운 저편을 향해 있고 베일 너머의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며 “남성적 허무가 ‘달’로 표상되는 여성적 손길에 의해 치유되면서 관능의 음악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변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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