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미국 뉴욕 아폴로극장에서 개막한 한미 합작 뮤지컬 ‘드림걸스’. 1987년 브로드웨이 공연 이후 22년 만에 미국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 무대에 다시 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 제공 오디뮤지컬컴퍼니
“놀라운 girl, 환상적인 girl, 대단한 girl” 《‘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은 다양한 공연에 대한 심층 분석을 담아낸 코너입니다. 망연자실(望演自失)이란 ‘공연을 보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잠시 넋이 나갔다’는 뜻을 지닌 조어입니다.》 노래-춤-무대 ‘삼박자’ 공연도중 기립박수 열광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이 수군거린 얘기가 아니다. 공연 중간 중간 객석에서 터져 나온 환성이었다. 1막이 끝날 무렵 여주인공 에피 역의 모야 앤절라가 ‘아임 낫 고잉’을 절창하는 장면에서는 공연 중간인데도 전체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22일 미국 뉴욕 할렘의 아폴로 극장에서 개막한 한미합작 뮤지컬 ‘드림걸스’는 이처럼 뜨거운 반응 속에 미국 무대에 섰다. 드림걸스는 1981년과 1987년 두 차례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제작되고 2006년 영화화된 작품을 한국 오디뮤지컬컴퍼니 신춘수 대표와 ‘코러스 라인’의 프로듀서 존 브릴리오가 새로 제작한 뮤지컬이다. 올해 2월 한국에서 먼저 초연했다. 미국 공연 수익의 일정 부분은 한국으로 들어온다.
‘드림걸스’엔 미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녹아있다. 다이애나 로스가 이끌었던 슈프림스와 모타운 레코드사 창업주 베리 고디 주니어의 실화를 토대로 했다. 탁월한 사업 수완으로 1960, 70년대 흑인음악을 주류 문화로 올려놓지만 그 과정에서 친구를 잃는 매니저 커티스, 거만함 때문에 쫓겨나지만 마침내 재기하는 에피, 시골 출신으로 팝의 디바가 됐으나 커티스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디나(사이샤 머캐도)가 서로 부딪히면서 고통과 갈등을 겪고 배신하고 화해한다.
이런 배경은 음악에도 표현됐다. 흑인음악인 리듬 앤드 블루스(R&B)가 백인음악과 타협해 이지 리스닝 계열이나 디스코로 변하는 흐름과, 이에 맞서 흑인음악의 정체성을 강화한 솔로 진화하는 과정을 이 뮤지컬의 음악은 모두 담아냈다.
2월 시작된 한국 공연은 이런 역사적 맥락과 토양을 벗어난 탓에 다소 이질적으로도 느껴졌다. 그러나 미국 공연에선 공연장소부터가 역사의 일부분이었다. 아폴로 극장은 이 뮤지컬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에피, 디나, 로렐(에이드리엔 워런)로 구성된 3인조 걸그룹 드리메츠가 데뷔했던 무대다. 이 극장은 올해 마침 75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쳤는데 이번 공연이 그 재개관작이다.
여기에 흑인의 타고난 노래와 춤을 곁들이니 신토불이(身土不二)라 해도 제격일 무대였다. 4명의 주연 배우는 ‘빠르기는 바람 같고, 느리기는 숲과 같고, 공격할 때는 불과 같고 멈출 때는 산과 같으라’는 손자병법의 말을 체현했다. 바람둥이 가수 지미 역의 체스터 그레고리가 제임스 브라운 같은 흑인 스타를 흉내내면서 객석을 바람처럼 휘저으면 이어 모야 앤절라의 뜨거운 목소리가 불을 질렀다. 커티스 역의 샤즈 라마르 셰퍼드가 영리한 사업가에서 야비한 독재자로, 계절의 변화처럼 캐릭터 변화를 자연스럽게 이끈 한편 화려한 디나 역의 사이샤 머캐도는 오히려 튀지 않고 숨어 있다가 커티스와 결별을 고하는 마지막 순간 우뚝 솟아났다.
이번 미국 공연은 배우만 미국 흑인배우로 바뀌었을 뿐 한국무대와 거의 같았다. 가로세로 2×6m의 이동식 발광다이오드(LED) 대형 패널 5개와 의상 400여 벌, 가발 170여 개도 한국에서 제작했다. 특히 LED 패널을 이용한 무대연출은 배우들의 검은 피부와 강렬한 대조를 이뤘다. 공연을 관람한 뮤지컬 배우 로런 림 잭슨은 “LED 조명과 영상이 황홀해 당장 브로드웨이에 올려도 손색없다”고 말했다. 교사인 에밀리 화이트 씨는 “LED 패널을 영상 투영뿐 아니라 무대세트의 일부로 활용해 환상적”이라고 말했다.
드림걸스는 12월 12일 아폴로 공연을 마치고 볼티모어 시카고 보스턴 로스앤젤레스 필라델피아 등 미국 전역 16개 도시를 1년간 순회공연한 뒤 브로드웨이에 입성한다. 신춘수 대표는 “‘오랜만에 롱런할 히트작이 나왔다’는 현지 반응 때문에 순회공연을 단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연은 영화감독 조지 루커스와 스파이크 리, NBC 뉴스 앵커 톰 브로코도 관람했다. <뉴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