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대구 텍스타일아트도큐멘타’전-‘2009 청년미술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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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4일 03시 00분


‘2009 대구 텍스타일아트도큐멘타: 패브릭 아르케’전에서 선보인 김순임 씨의 ‘더 피플 14-이옥란’. 목화솜과 광목을 이용해 바느질한 작품으로 이불과 고단한 몸을 누인 할머니가 한 몸처럼 보인다. 대구=고미석 기자
‘2009 대구 텍스타일아트도큐멘타: 패브릭 아르케’전에서 선보인 김순임 씨의 ‘더 피플 14-이옥란’. 목화솜과 광목을 이용해 바느질한 작품으로 이불과 고단한 몸을 누인 할머니가 한 몸처럼 보인다. 대구=고미석 기자

산업과 예술의 악수… 달구벌 ‘문화 도전’
목화솜 이불 위로 지친 몸을 누인 주름진 할머니의 모습. 몸이 스르르 녹아 이불과 하나 된 것처럼 보이는 설치작업에서 뭉클함이 전해온다. 길고 고단한 삶에 순응하며 살아온 이의 곤고함과 평온함이 한땀 한땀 바느질에 스며있기 때문이다.(김순임의 ‘더 피플 14’)

알록달록한 천이 기둥을 친친 휘감고 있다. 못 쓰는 옷들을 활용해 만든 설치작품은 버려진 것이 예술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무심코 스친 공간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홍현숙의 ‘옷기둥’)

29일까지 대구 달서구 성당동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2009 대구텍스타일아트도큐멘타-패브릭 아르케’전에서 만난 작품들이다. 섬유와 아트를 접목한 전시는 섬유산업의 메카인 대구가 세계적 패션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발판으로 준비한 자리다.

대구시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전시를 마련했다. 중구 수창동 KT&G 별관 1∼3층에서 29일까지 열리는 ‘2009 청년미술프로젝트’. ‘욕망의 정원’을 주제로 국내외 작가 40명이 참여한 전시에선 ‘장소’를 주목해야 한다. 예술이란 마법을 통해 산업공간이 독특한 아우라가 깃든 전시공간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 ‘텍스타일아트…’전
“세계적 패션도시로 도약”
섬유의 예술적 가치 탐구

○ 패션산업과 만나다

2009 도큐멘타에는 화가, 설치작가, 패션디자이너, 자연염색가 등 38명이 참여했다. 전시감독을 맡은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는 “섬유산업은 대구 산업화의 상징이었으나 21세기 문화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선 유명 비엔날레와 어깨를 겨룰 만한 전시를 통해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며 “미술과 섬유의 만남을 통해 텍스타일 아트의 예술적 원형이 무엇인지 탐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재료의 사용에 초점을 둔 ‘숨쉬는 결’ 코너에선 ‘장갑작가’ 정경연 씨와 의류 상표로 거대한 웨이브를 창조한 김지민 씨, 둘로 쪼개진 부처를 선보인 안성금 씨 등이 섬유와 친연성을 공유한 작품을 내놓았다. ‘도전하는 패션’의 경우 디자이너 최연옥, 도호, 박동준 씨 등의 실험적 디자인과 더불어 춤사위로 옷을 만든 신혜리 씨, 위생용 거즈를 소재로 사용한 진성모 씨가 눈길을 끈다. ‘빛과 색’에선 김봉태, 김인겸 씨의 작품과 패션디자이너 노라노의 삶을 다룬 조덕현 씨의 설치작업 등을 선보였다. 053-606-6114

■ ‘청년미술프로젝트’
KT&G 옛 공장이 전시장
노동현장의 ‘울림’ 느껴져


대구의 옛 도심에 자리한 KT&G 별관에서 열린 ‘2009 청년미술프로젝트’. ‘욕망’을 주제로 젊은 작가들의 발랄한 상상력을 담아낸 작업이 근대의 산업공간을 현대적 미술 전시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사진 제공 청년미술프로젝트
대구의 옛 도심에 자리한 KT&G 별관에서 열린 ‘2009 청년미술프로젝트’. ‘욕망’을 주제로 젊은 작가들의 발랄한 상상력을 담아낸 작업이 근대의 산업공간을 현대적 미술 전시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사진 제공 청년미술프로젝트

○ 산업공간과 만나다

대구아트페어(25∼29일)와 짝을 이룬 ‘청년미술프로젝트’의 경우 전시 공간 자체가 인상적 작품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본관과 나란히 자리한 별관은 1970년대 세워진 근대산업유산으로 1996년 공장이 폐쇄될 때까지 대구 시민의 삶과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층고 4.5m, 가로세로 36x74.3m에 이르는 별관에 들어서면 버려진 것, 낡은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예술의 힘이 느껴진다. 산업유산의 흔적과 시간의 얼룩이 오롯이 드러난 공간에는 창조적 힘으로서 욕망을 조명한 작업이 놓여있다. 사라지는 남극의 풍경을 바라보는 릴릴의 비디오를 비롯해 붉은색 식탁과 1인용 의자로 욕망의 속내를 파고든 노민경 씨의 설치작품 등을 보고 2층 계단에 올라 천장을 보면 여인들의 치마 속을 그린 홍일화 씨의 회화가 맞아준다.

이어 문명의 감시자를 오브제로 표현한 독일작가 외르크 오베르그펠 씨,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이란 설명과 함께 관람객의 얼굴이 비치는 권오인 씨의 설치작업과 민정연, 이시우, 이혜승, 박은선, 전리해 씨 등 청년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3층은 김태준, 이배, 홍승혜, 이혜림 씨 등 40세 이상 작가들이 참여하는 특별전 코너다.

노동의 땀이 배어있는 야생적 공간과 예술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낸 독특한 울림을 체험할 기회다. 책임 큐레이터 이달승 씨는 “연초제조창은 어제의 산업 욕망이 남긴 도시 속의 무거운 그림자”라며 “세계적 전시장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공간인 만큼 가능한 한 공간의 매력을 훼손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전시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광주비엔날레 이후 지자체들이 앞 다퉈 대형 전시로 경쟁하고 있지만 세계 문화도시로의 성장을 꿈꾼다면 장기적이고 치밀한 로드맵이 필요하다. 지역의 정체성이 담긴 탐낼 만한 주제와 탐낼 만한 공간을 갖춘 대구. 미술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려는 이 도시의 도전을 지켜볼 일이다.

대구=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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