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과 한국의 다문화 현실과 관련 제도는 얼마나 다를까. 해외의 다문화를 통해 우리는 어떤 점을 배워야 할까. 2009년 연중기획 ‘달라도 다함께-글로벌 코리아 다문화가 힘이다’의 제4부 ‘해외서 배운다’가 마지막 회를 맞았다. 본보 다문화팀의 해외 취재에 동행했던 전문가 3인이 이와 관련해 글을 보내왔다. 이것으로 4부를 마치고 다음 주부터는 2회에 걸쳐 올 한 해의 다문화 기획을 총정리하는 기사를 소개할 예정이다.》 리스본 조약에 근거하여 조만간 유럽합중국이 만들어질 것이 확실하다. 그렇지만 유럽인들은 1985년 6월 14일 체결된 솅겐 조약에 따라 이미 국경검문소를 거치지 않고 자유롭게 다른 나라를 방문할 수 있고, 체류 또는 취업할 수 있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솅겐 조약에 가입하지 않고 국경검문소를 계속 유지하고 있으나, 유럽연합(EU) 회원국 국민들의 방문과 체류 및 취업은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다.
유럽 나라들은 EU 회원국 출신 외국인들은 내국인처럼 대하지만, EU 비회원국 국민들은 입국 규제와 체류 허가 및 취업 허가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유럽 나라들은 ‘인도주의’에 기반을 두어 이민자의 가족 재결합을 허용하고, 결혼 이민자를 수용하며, 정치적 난민 또는 망명자를 받아들여 왔다. 그런데 최근 덴마크와 스웨덴 등 중도우파 내각이 집권한 나라에서는 난민 수용 규모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있다. ‘지나치게 관대한’ 난민 정책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증가하고 있고, 사회복지비용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럽 각국은 공통적으로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그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각국 정부는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외국인 전문기술 인력과 숙련 노동자를 유치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럽에서 외국인 인재 유치에 성공한 나라로는 아일랜드를 들 수 있다. 아일랜드는 과거 이민 송출국이었으나, 1990년대 비약적 경제성장으로 이민 수용국으로 바뀌었다. 외국 기업과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고, 더불어 이민자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민자들은 아일랜드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였고,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독일 프랑스 스웨덴 덴마크 정부들은 외국인 우수 인재의 체류 허가와 취업 허가 절차를 개선하고 영주권 또는 국적 취득에 편의를 제공하는 등 여러 가지 유인책을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유럽 여러 나라 정부는 기존 이민자들을 자국 사회로 통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유럽 여러 나라의 사정은 이미 다민족·다문화사회가 조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문화사회의 진입 단계에 있는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그렇지만 유럽은 수백 년 동안 국민국가의 전통을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역사가 짧은 이민국가보다는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 각각의 나라들에서 저출산·고령화라는 위기의 타개책으로 이민자를 적극 수용하면서 다문화사회를 준비하고, 자국 실정에 맞는 통합 모형을 개발한 방식에 주목해 배울 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日, 외국인밀집지 도시간 네트워크 탄탄▼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다문화 현상을 겪고 있다. 한국 내 외국인 인구가 약 120만 명으로 총인구의 2.5%, 일본은 약 215만 명으로 1.7%를 차지한다. 다문화사회를 인구 5% 이상으로 본다면 한국과 일본은 다문화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미 한일 양국은 도시와 농촌에서 다문화 현상을 경험하고 있으며, 글로벌 사회로의 전환이 매우 시급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다문화 제도를 비교한다면 한국이 월등하게 앞선다. 한국은 관련 법안이 4개인데 일본은 건의서 몇 개 빼면 법률이 하나도 없다. 한국은 246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70%가 조례를 제정했는데, 일본은 1800개 지자체 가운데 단 3곳만 조례를 제정하였다. 숫자로만 비교해 본다면, 한국의 다문화 시책은 매우 선진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외국인이 살기 좋은 도시 순위나 다문화 시책의 충실도를 비교한다면 한국은 일본보다 뒤떨어진다.
한국은 다문화 포용 정책을 저출산 고령화 극복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정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최근 3, 4년간 중앙정부 주도로 법률 조례제정과 재정 지원을 통해 다문화 시책을 추진해 왔다. 일본은 오랫동안 외국인 수용에 소극적이었던 중앙정부 대신 지방정부가 다양한 다문화 실험을 통해 아래로부터 착실하게 제도를 정비해 왔다.
일본에 비해 한국은 다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실정이다. 외국인을 위한 국제교류협회나 다문화플라자는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어렵다. 외국인 밀집거주지역에서 활동하는 민간기구나 시민단체의 지원이 없다면 적지 않은 법령과 제도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형편이다.
한국 정부의 다문화 시책은 단기간에 압축 성장을 거둔 것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지나치게 산발적이고 속도가 빨라서 일본처럼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다음 세 가지 점에서 개선이 시급하다.
첫째, 다문화 관련 제도와 기구, 예산의 과잉 중복 투자를 고쳐야 한다. 관련 기구와 법률을 통합하고 부처 간 다문화 정책을 조정 집행하는 기구가 있어야 한다. 둘째, 현장에서 다문화 시책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일본의 외국인집주지역 도시회의는 지자체 간 네트워크로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정보 교환이나 요망서 제출, 대안 제시는 다문화 현장에서 얻어진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된다. 한국도 수도권 내 외국인이 밀집된 지자체 간 연합기구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 셋째, 다문화 제도에 강한 한국, 현장과 실험에 강한 일본의 노하우가 결합되면 한결 이상적이다. 다문화 환경이 미국이나 호주, 유럽과 다른 한일 양국이 공동 협력하여 바람직한 동북아형 다문화 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 경험’ 우리 실정에 맞게 토착화해야▼
이주민의 증가로 다문화 ‘열풍’이 불고 있는 한국 사회에 영국 프랑스 독일의 경험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한국 사회에 이미 잘 알려진 이 국가들의 이민 정책은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여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 모두 더는 민족적 혹은 인종적 소수자를 이민자라는 하나의 범주로 설정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소수집단의 문제는 더는 이민자 집단 일반의 문제가 아닌 빈곤계층의 문제나 특정 지역의 사회경제적 특징에서 기인한 사회 문제로 접근하는 시도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영국의 런던 테러, 프랑스의 북아프리카계 이민자 2세의 소요사태, 독일의 통일과 터키계 이민자의 증가는 유럽 3국의 이민 정책에 새로운 변화와 사회적 의제를 요구하고 있다. 오랜 이민의 역사와 다양한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소수자들이 겪는 사회경제적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나아가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하나의 공동체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정체성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최근 영국 정부가 국적 취득 과정을 강화하며 ‘영국인 됨’의 문제를 이슈로 제기하고 있는 이유나, 프랑스와 독일 모두 이민자들에게 요구하는 교육과 학습의 부담을 늘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유럽 3국의 변화가 한국 사회에 어떤 정책적 함의를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보다 앞선 경험들에서 고안된 정책들이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분명 타당하지 않다. 유럽 3국의 경험을 고려하는 것은 일종의 ‘선행학습’이다. 한국 사회보다 더 다양하고 심화된 이민 정책을 추진해 온 경험과 교훈을 미리 학습하고 한국 사회의 문제를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행학습’이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수준에 맞지 않거나 혹은 전혀 상관없는 무분별한 선행학습은 체계적인 수학 능력의 발전에 방해가 되듯이 한국 사회의 이민 정책은 철저하게 한국의 이주민들이 처한 상황과 단계에 맞게 고민하고 추진해야 한다. 국적을 취득하지 않으면 모든 면에서 배제되는 국외자 신분인 외국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한국 사회가 영국의 국적 취득 과정 강화를 선행학습으로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험이 한국 사회에 적절한 대안으로 논의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닥칠 가능성과 잠재적 함의가 아닌 오늘 한국의 이주민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과 실태를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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