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재즈 15년 남 흉내 안 내요, 날 그대로 노래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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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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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국 공연하는 재즈가수 나윤선

말소리가 노래 같은 사람이 간혹 있다. 24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난 재즈가수 나윤선(40)은 그런 사람이었다. 똑똑 끊어 매듭짓는 문장마다 멜로디를 얹은 듯했다. 기사 작성을 위해 녹음한 대화를 다시 들으면서도 탁 트인 맑은 소리에 귀가 즐거웠다. 역시 가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학 졸업 때까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며 살리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어찌어찌 여기까지 왔다”는 말에 뒤늦게 수긍이 갔다.

나윤선은 한국보다 외국에서 먼저 인정받은 뮤지션이다. 1995년 프랑스 파리로 떠나 보베 국립음악원 성악과를 수석 졸업했다. 1999년 생모르 재즈페스티벌, 2005년 앙티브주앙레팽 국제 재즈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2007년에는 정상급 재즈 음악인만 서는 미국 뉴욕 ‘재즈 앳 링컨 센터’에서 한국인 최초로 공연했다. 지난달에는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인 슈발리에장을 받았다. 이 또한 한국 대중음악 가수로는 처음이다.

“건국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뒤 8개월 정도 한 기업 홍보실에 근무하다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그만뒀어요. 친구 권유로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오디션을 봤는데 덜커덕 붙었죠. 재즈 공부도 친구 말 듣고 시작한 거예요. 프랑스 가기 전에는 재즈 들어본 적도 없었어요. 무식해서 용감했던 거죠.”(웃음)

부모(나영수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성악가 김미정) 덕분에 어릴 때부터 음악에는 익숙했다. 하지만 그는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뜨거운 맛을 많이 봤다”고 했다. 자신보다 노래 잘하는 훌륭한 사람이 세상에 너무 많다는 생각, 죽을 때까지 아무리 발버둥치며 노력해도 그 정도 실력은 감히 꿈도 못 꾸겠구나 하는 생각을 공부하면서 갖게 됐다.

“그렇다고 ‘아, 나는 어차피 안 되니까’ 그건 또 아니잖아요.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걸 해야죠. 그러다 보니 생활이 단순해졌어요. 가진 모든 시간을 음악에 다 바쳐야 관객에게 최소한의 예의라도 지킬 수 있으니까요. 조금씩이라도 계속 발전해야 나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덜 미안해지고. 중요한 길목에서 기회를 주고 도와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그의 말대로 재즈는 ‘대중에게 많이 소비되는’ 음악이 아니다.” 2년 전 낸 5집 ‘메모리 레인’에서 한국 대중음악 작곡가의 노래를 불렀지만 나윤선은 “흔히 얘기하는 ‘재즈의 대중화’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북유럽 재즈 뮤지션들에게 한국 대중음악을 연주하게 해 그들과 함께 즐겼을 뿐이다. 28일 오후 7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함께 공연하는 노르웨이 트럼펫 연주자 마티아스 에익과의 만남도 그런 ‘여행’의 한 과정이다.

“지향점? 모르겠어요. 재즈를 시작한 지 15년밖에 안 됐는데요. 배우는 과정이죠. 길을 가다가 누군가를 만나 잠시 같이 연주하고. 또 다른 길에서 다른 이를 만나고…. 남의 흉내를 내지 않으려는 마음은 확고해요. 내가 할 수 있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준 까닭에 조금이라도 받아들여진 것 같으니까요.”

재즈는 미국에서 움텄지만 유럽 시장의 열기도 뜨겁다. 프랑스에만 재즈 페스티벌이 1000개가 넘는다. 나윤선은 “지금 한국의 재즈 페스티벌은 2개뿐이지만 십수 년 뒤 세계 재즈의 중심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로 옮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존 스코필드, 조 로바노 같은 쟁쟁한 재즈 뮤지션들이 한국의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 와보고 하나같이 미칠 듯 흥분했어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자기 음악을 따라 부르면서 이렇게 열정적으로 즐기는 관객이 없다면서. 한국의 재즈 관객은 뮤지션에게 다음 공연에 오를 힘을 주는 최고의 에너지원이에요.”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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