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동학]<11>제임스 조이스 작품에 빠진 ‘율리시스 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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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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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8년째 읽고 있는 ‘율리시스 독회’ 회원들이 서울대 교정에 모였다. 이들은 “외국에는 24년 동안 율리시스만 읽는 모임도 있다”며 “앞으로 율리시스의 재미를 더 많은 사람이 느꼈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영대 기자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8년째 읽고 있는 ‘율리시스 독회’ 회원들이 서울대 교정에 모였다. 이들은 “외국에는 24년 동안 율리시스만 읽는 모임도 있다”며 “앞으로 율리시스의 재미를 더 많은 사람이 느꼈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영대 기자

“8년째 읽지만 읽을수록 단맛” “‘율리시스’는 ‘chewing cud’야. 소가 여물을 씹을수록 단물이 나오니까 자꾸만 더 씹잖아요? ‘율리시스’도 읽으면 읽을수록 더 재미가 느껴지는 소설이지.”(김종건 고려대 명예교수)

소설 한 권을 읽는 데 7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걸린다면? 게을러서가 아니다. 2002년 9월부터 이달까지 매달 한 번씩 쉬지 않고 모여 4시간씩 읽었는데도 전체 18장 중 15장을 읽고 있다. 바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는 모임, ‘율리시스 독회’다.

28일 오후 2시 서울대 사범대의 한 강의실. 윤희환 강남대 교양학부 교수, 강서정 단국대 강사 등 독회 회원 13명이 모였다. 책상 위에는 ‘율리시스’ 원서부터 번역본, 제임스 조이스 전기, 노트가 있었다. 먼저 인터넷으로 내려받은 ‘율리시스’ 낭독 음성 파일을 들었다. 그 뒤 시작한 토론은 왜 이들이 8년째 ‘율리시스’를 읽는지 짐작하게 했다.

“2088행에 보면 ‘the rite is poet's rests’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이건 무슨 의미인가요?”

“‘rite’를 형식만 남아 있는 상태라고 보고, ‘rest’는 영원한 휴식, 그러니까 죽음의 의미로 보면 되지 않을까요? 조이스는 예술가의 의무가 그 시대 삶의 정수를 표현하는 거라고 봤으니, 형식만 남아 있는 상태는 죽음이라는 거죠.”

‘율리시스’는 아일랜드 더블린을 배경으로 1904년 6월 16일 소시민인 레오폴드 블룸이 일상 속에서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겪는 방황을 엮어낸 소설이다. 이날 읽은 부분은 15장 중 술에 취한 블룸의 의식의 흐름을 묘사한 부분. 토론은 ‘율리시스’ 전체는 물론이고 조이스의 삶과 작품 세계를 넘나들었다.

원서-낭독파일 등 준비 매달 4시간 격없는 토론
“난해해도 파격적인 소설 일반인도 참여하세요”

독회에 참여하는 회원은 15∼20명. 대부분 영문학과 교수로 조이스의 작품을 전공으로 삼고 있다. 이종일 세종대 영문과 교수(한국제임스조이스학회장)는 “지금까지 ‘율리시스’를 네 번 읽었는데 처음 읽을 때는 8개월, 두 번째 읽을 때는 6개월이 걸렸다”며 “처음 읽을 때는 난해하지만 그 속에 질서의 실마리를 교묘하게 숨겨놨기 때문에 보물찾기하듯 그 실마리를 찾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길중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율리시스’를 읽었기 때문인지 처음 더블린에 갔을 때 꼭 와봤던 곳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며 “조이스가 더블린이 없어지면 자기 작품만으로도 더블린을 복원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을 정도로 당대 역사, 문화, 사회를 세밀하게 담아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문학에서 가능한 모든 실험을 한 작가”(김상욱 경남대 영어학부 교수), “깊이만큼 구절마다 유머가 넘쳐서 읽는 즐거움이 있다”(전은경 숭실대 영문과 교수)는 평도 따랐다.

특히 김종건 고려대 명예교수는 ‘율리시스’만 세 번, 조이스의 작품 전체를 번역한 ‘국내 조이스 연구의 산증인’이다. 김 교수는 “해석의 모호성, 복수성(複數性) 때문에 외국에는 ‘조이스 산업’이라고 부를 정도로 연구자가 많다”며 “앞으로는 셰익스피어를 능가하는 작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율리시스’가 난해한 작품으로만 평가받는 것은 경계했다. “당시 금서로 지정됐을 정도로 파격적인 작품이었어요. ‘율리시스’의 18장은 워낙 재미있어서 그냥 드러누워서도 읽을 정도거든.”

민태운 전남대 영문과 교수는 “이탈리아에서 열린 조이스 학회에 갔는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식당 주인이 왔더라. 전공자도 아닌 일반인들이 ‘율리시스 독회’를 하면서 학회에 온 것”이라고 전했다. 이 일화는 ‘율리시스’의 재미를 좀 더 많은 사람이 느꼈으면 하는 회원들의 바람을 대변한다. 독회의 문호도 열어뒀다. 클래식 현악기 전문점 ‘심포니’를 운영하는 정인경 씨는 3년 전부터 지인의 소개로 독회에 나온다. 정 씨는 독회 내내 색색의 볼펜으로 토론 내용을 필기했다. “내용이 어려워서 전 토론 때 한마디도 못해요. 하지만 읽을수록 ‘율리시스’의 깊이에 놀라죠. 이 독회에만 오면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어요.”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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