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이맛!]칼바람에 맞선 그대여… ‘과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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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4일 03시 00분


‘과메기’란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눈을 꿰어 널었다’는 뜻의 관목어(貫目魚)가 발음상의 변화로 과메기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새끼를)꼬아 묶어’ 말렸다고 해서 또한 과메기가 되었다고 한다. 어느 쪽이 맞는 걸까? 과메기는 두 종류로 나뉜다. 배를 갈라 내장을 빼고 말린 것을 ‘배지기’, 통째로 말린 것은 ‘통마리’라고 한다. 통마리는 포항사람들이 즐겨 먹는 과메기다. 차디찬 바닷바람 속에서 수분이 빠져나간 과메기는 고소함과 쫀득한 맛이 어우러져 겨울철 별미로 인정받고 있다. 옛날엔 부엌 봉창에 걸어놓고 말렸는데 아궁이에서 나오는 연기가 과메기를 훈제시키는 효과를 냈다고 한다. 연기가 기름기를 제거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윤대녕의 ‘어머니의 수저’에서>

밤엔 얼고 낮엔 녹는다. 칼바람이 뼛속까지 저려온다. 몸속 물기가 점점 말라간다. 꾸덕꾸덕 가렵다. 꼬들꼬들 녹작지근하다. 꼬득꼬득 목이 탄다. 소금기가 살 속에 스며든다. 아리다. 붉은 살에 그림자가 살짝 어린다. 피부에 푸른빛이 감돈다. 메마른 살갗에 기름기가 흐른다. 배가 말라붙어 등가죽에 붙는다.

과메기는 꽁치 미라다. 옛날엔 청어 미라였다. 청어가 잡히지 않아 꽁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미라는 두 가지다. 뼈 내장 머리를 없애고 말린 배지기(편과메기, 짜배기, 짜가리), 배를 따지 않고 통째로 말린 통마리(통과메기, 엮걸이)가 그것이다. 배지기는 칼로 베어냈다고 해서 그렇다고 한다. 보통 배지기는 3∼5일, 통마리는 10∼15일 말린다. 말랑말랑 물기가 반쯤 못 미치게(약 40%) 말린다. 반쯤말린 멸치 오징어나 같다고 할까.

과메기덕장은 포항 구룡포가 으뜸이다. 영일만에서 불어오는 소금기 머금은 갯바람과 기온, 습도가 안성맞춤이다. 갓 잡은 것보다 냉동꽁치를 덕장에 매단다. 부산 어시장에서 사다가 영하 10도 상태에서 보관해뒀던 것이다. 대부분 훗카이도 부근과 북태평양 쿠릴열도에서 원양어선이 잡아온 꽁치다. 국내 연안에서 잡히는 것은 작고 기름기가 적어 맛이 썩 좋지 않다.

배지기는 꽁치 배를 완전히 가르면 안 된다. 꼬리부분이 떼어지지 않고 붙어있도록 갈라야 덕장대나무에 그 가운데를 시소 타듯 걸쳐 놓을 수 있다. 통마리는 비닐 끈으로 등허리를 한 두름으로 묶어 매단다. 눈을 꿰어 말리는 건 옛날 얘기다. 구룡포 어민들은 오래 말린 통마리를 즐겨 먹는다. 맛이 깊고 그윽하다. 배지기는 씹는 맛이 아무래도 푸석하다. 비린내도 더하다.

꽁치창자는 갈매기 떼들의 최고음식이다. 배지기작업장 주위엔 갈매기울음소리가 왁자하다. “끼∼룩! 끼∼룩!” 악귀들처럼 새까맣게 달려든다. 한 점 던져주면 서로 엉켜 진흙탕싸움을 벌인다. 새우깡을 던져줘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내장은 모두 발라내고/영롱한 의식은 바다에 남겨두고/헛것인 몸뚱이만/펄럭인다//동해 비릿한 바람이/불어오면 올수록 나는/나를 잃어야 한다…//너희들이 가져가는 건 빈 몸뚱이/저 깊은 바다 속 집에서는/내 아이들이 성실하게/살다간 아비의 전기를 읽고 있다’ <권선희의 ‘북어의 노래’에서>

과메기 맛은 어떻게 말리는 가에 달려있다. 잘 말린 것일수록 감칠맛이 난다. 구수하고 담백하며 비린내가 거의 없다. 겉은 말랐는데 속이 물러 터진 것, 너무 말라서 마른 명태처럼 질긴 것도 있다. 자연 바람이 아닌 열풍기로 서둘러 말린 것 중에 많다. 잘못 말린 것은 역하다. 입에 대는 순간 진저리를 친다. 대부분 배가 불룩하고 등지느러미에 기름기가 젖어있다. 살이 하얗고 등이 거무스름하다.

꽁치 고등어 정어리 멸치 참치 삼치 연어는 붉은 살 생선이다. 등이 푸르고, 배는 은백색이다. 푸른 등은 바다색과 비슷하다. 눈 밝은 바닷새들도 언뜻 알아보기 힘들다. 얕은 바다에서 살면서 쉬지 않고 움직인다. 기름기가 많아 맛이 좀 느끼하고 비리다. 노릇노릇 구워 먹어야 딱이다. 고갈비(고등어구이)가 그렇다. 지방은 혈압을 낮추고 심장질환을 예방한다. 비타민 등 다른 영양분도 풍부하다. 그러나 쉽게 상한다. 신선한 것을 먹어야 하는 이유다. 조기 광어 대구 명태 가자미 우럭 도미 병어 갈치 등 흰 살 생선은 굼뜨다. 깊은 바다에서 나무늘보처럼 산다. 기름기가 적고 맛이 담백하다. 탕과 찌개로 안성맞춤이다. 얼큰하고 시원한 대구탕이 좋은 예다.

과메기는 요리가 필요 없다. 돌미역이나 생미역으로 돌돌 말아 초장에 듬뿍 찍어 먹으면 그만이다. 김이나 깻잎 배춧속으로 쌈 싸 먹어도 누가 시비 거는 사람 없다. 톡톡 알이 터지는 마늘, 콧속이 시큰한 풋고추, 상큼 풋풋한 쪽파, 향긋한 미나리, 홍당무 등도 필수다. 생미역이 입천장에 달라붙어 솔솔 바다냄새를 풍긴다.

요즘엔 솔잎과메기, 녹차과메기, 소나무훈제과메기, 참나무톱밥훈제과메기, 홍삼과메기, 키토산과메기, 복분자과메기, 둥굴레과메기, 오징어먹물과메기에 심지어 금을 코팅한 황금과메기까지 나왔다.

구룡포는 어느 횟집이나 과메기식당이다. 서울에선 이름에 영덕, 구룡포가 들어간 식당이라면 볼 것도 없다. 중구다동 영덕막회(02-755-9792), 무교동 효령빌딩 지하 1층 영덕회식당(02-757-0363), 성북구청 후문 구룡포전어과메기회집(02-927-5340) 등이 그렇다. 사장 고향이 구룡포인 강남구 신사동 원두막(02-540-1532)도 있다. 택배도 가능하다. 신문지로 싸서 냉동실에 보관하면 된다. 구룡포과메기조합(054-276-0760).

귀가 떨어져 나갈듯 칼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날, 갈매기 떼 악머구리처럼 울어대는 동해 바닷가 선술집, 한 사내가 과메기안주에 시린 소주를 대폿잔으로 툭툭 털어 넣는다. 뼈와 내장을 발라낸 과메기처럼 무심한 얼굴. 숱한 밤 얼고, 숱한 낮엔 녹아, 이젠 인생을 몽땅 덕장에 널어놓고, 세상의 밑바닥까지 온 미라. 밖엔 함박눈이 왕벚 꽃잎처럼 흩날린다.

‘아궁이에서 굴뚝까지는/입에서 똥구멍까지의/길/비좁고,/컴컴하고,/뜨겁고,/진절머리 나며,/시작과 끝이 오목한 길/무엇이든지 그 길을 빠져나오려면/오장육부가 새카매지도록/속이 타야한다/그래야 세상의 밑바닥에 닿는다, 겨우’ <안도현의 ‘굴뚝’에서>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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