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속의 근대 100景]<44>민족문화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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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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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동아일보 기획 연재물 ‘오천년 문화 재음미’ 중 여성 인물 편에 사용된 삽화. ‘사상(史上)에 빗난 여성의 편모(片貌)’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34년 동아일보 기획 연재물 ‘오천년 문화 재음미’ 중 여성 인물 편에 사용된 삽화. ‘사상(史上)에 빗난 여성의 편모(片貌)’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우리 선인들의 외방에 끼친 자취로서 역사상에 나타난 사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를 들어… 우리의 그에 대한 역사적 사명이 어떠한 것인가에 대하야 …나타내여 보려고 한 셈이다” ―동아일보 1934년 12월 17일자 ‘외방에 끼친 선조의 자취’》

일제 민족말살 탄압속 선덕여왕-다산 등 ‘역사 재발견’ 연재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일제는 황국신민화 운동이라는 민족말살 정책을 통해 탄압을 강화했다. 창씨개명, 신사참배 강요와 함께 우리말 사용과 역사교육조차 금지된 엄혹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유구한 민족문화와 민족혼에 대한 관심은 꺾이지 않았다. 역사적 전통을 기억하고 계승하려는 움직임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지령 5000호를 맞은 1934년 10월 9일 동아일보에는 ‘오천년 문화 재음미’라는 제목의 기획 연재가 시작됐다. ‘조선심(心)과 조선색’ ‘내 자랑과 내 보배’ 등의 주제로 이뤄진 이 연재는 조선의 사회제도, 선인들의 자취, 미술과 공예, 이두와 한글, 우리 역사 속 여성 등 다양한 분야의 유산들을 상세히 소개해 우리 전통에 대한 자존감을 높이고자 기획됐다. 연재는 12월 17일까지 이어졌다.

“여왕의 어휘는 덕만이라. 왕은 삼국시대를 대표하야 유일한 여성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왕은 그 부친 진평왕의 위대한 체격과 거룩한 심덕을 받어나서 그 성품이 또한 너그럽고 착하고 밝고 민첩하신 성덕이 겸전하셨다” (1934년 10월 12일) 오늘날 TV 드라마를 통해 사랑받는 선덕여왕을 소개한 기사다.

역사 속 위인들의 일생을 재조명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작업도 활발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 특집이 대표적인 예였다. 1935년 7월 16일 동아일보 3면에는 다산 정약용 서거 100주기 특집 기사가 실렸다. 전면을 할애해 정인보의 ‘다산 선생의 일생’ 백남운의 ‘다산의 사상’ 현상윤의 ‘이조 유학 사상의 다산과 그 위치’ 등을 소개했다.

1936년 1월 1일 동아일보 신년 특대호 기사는 세종대왕의 측우기, 이순신의 거북선 등 세계적인 발명품들을 소개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부각했다. 1937년 12월 6일자 2면에서는 ‘발명조선의 대기염, 특허신안출원에 등록한 조선인이 반수이상’이란 기사를 통해 우리 조상들의 창조력과 기술력이 당대에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자부했다. “조선은 고려 시대의 활자와 청자 이순신의 구선(龜船) 등 세계적 발명의 기원과 자랑을 가지고 있고 선인의 재능이 빛나는 바 만커니…작년 1월부터 금년 6월 말일까지에 새로 특허와 실용신안으로 등록된 것만을 보아도 특허등록이 사십일 건 실용신안등록이 이백이십이 건의 다수에 달하고 … 조선인의 발명, 고안, 의장의 재능은 의연히 세계에 소리치고 있다고 한다.”

올해 한국은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에 한글을 수출했으며, 조선왕릉을 비롯해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등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일제강점기란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도 보존해온 우리의 민족 문화유산들은 이제 세계 여러 곳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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