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주가 흘러나온다. 박효신의 '피아니스트'. 두 달 간 매달린 곡이지만 여전히 어렵다. 주위에는 나보다 더 긴장한 듯해 보이는 12명이 둘러섰다. 1주일에 단 하루, 수업시간 1시간 30분 중 내게 할당된 시간은 고작 10분이다. 이날을 위해 울산에서 경기 부천까지 왕복 10시간을 오간다.
노래가 시작된다. 눈을 감고 선율에 몸을 맡긴다. "감정은 좋은데, 너무 힘이 들어갔잖아!" 트레이너의 계속되는 지적에 한숨이 난다. 박효신처럼 힘들이지 않고 깊은 소리를 내고 싶지만 늘 마음만 급하다.
스타이스트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김경조 씨(26)는 지난해 11월까지 음악보다 기계음에 익숙했다. 그는 울산의 자동차부품 생산업체에 다니고 있다. 얼굴 오른쪽에 길게 난 화상 흉터 때문에 중학생 때부터 품어온 가수의 꿈을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그에게 기회가 왔다.
노래방에서 부른 음원을 친구가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고, 이를 들은 기획사 대표가 오디션을 제의하면서 김 씨는 연습생이 됐다. 작은 소속사인데다 주말에만 배울 수 있는 점이 아쉽지만, 그는 다시 꿈을 꾸고 있다.
"헛된 꿈일 수도 있지만, 분명 한 걸음 나아갔잖아요."
●춤, 노래, 학벌, 성격까지 평가
연예인이 되는 지름길인 기획사 연습생은 되기도 힘들지만, 된 후에도 힘겨운 여정이 이어진다.
올 3월 약 7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잘나가는 대형기획사 연습생이 된 김모 군(18)은 "오디션에 통과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지만 그때부터 진짜 고생길이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매일 왕복 3시간 거리의 연습실을 오가며 4시간씩 노래와 춤을 연습했다. 고3 수험생인 만큼 학교 수업에도 충실했다. 회사에서 노래, 춤, 공부 모두 잘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를 원하기 때문이다.
로엔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송지은 양(16)도 "회사에서 다이어트 능력, 개인기, 학벌, 성격까지 평가하니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라이벌인 동료 연습생들은 그에게 늘 큰 자극이 된다.
"잠깐 기회가 왔을 때 '나는 준비된 연예인이다'라는 걸 확실히 보여줘야 계약할 수 있어 요. 같이 연습하는 15명과의 경쟁도 무지 심해요."
연습생이라고 다 가수가 되는 건 아니다. 기획사들은 연습생들을 엄격히 관리한다. 한 기획사에는 '지각 3번이면 연습생을 내쫓는다'는 규정도 있다.
연습생 대부분은 봉급이 없다. 정식 계약서도 쓰지 않는다. 소형기획사의 경우 최소 300만 원의 '연습비용'도 내야 한다. 그러나 연습생들은 불만을 드러낼 여유조차 없다.
송 양은 "인기 가수 대부분이 2, 3년간 연습생 기간을 거쳤으니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스타 등용문, TV 오디션
'TV 권력'이 막대한 시대, 방송을 통해 연예인의 꿈을 이루려는 사람들도 많다.
최근 연예인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았다. 엠넷(Mnet)의 '슈퍼스타 K'는 마지막회 시청률이 케이블 방송 최고 수치인 8.47%를 기록했고 10위권에 든 출연자들은 연일 화제가 됐다. 상위 10명은 엠넷에서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받으며 가수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이효리를 울린 감동적 노래'의 주인공, 시각장애인 김국환 씨(25)는 최종 10위 안에 들지 못했지만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며 첫 싱글 앨범을 발매했다. 그간 노래 실력은 뛰어나지만 장애 때문에 오디션 기회도 얻지 못했던 김 씨에게 '슈퍼스타 K'는 행운이었다. 그는 "비장애인 친구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뻤다"고 말했다.
하지만 TV 오디션 합격 역시 성공의 열쇠는 아니다.
2002년 방영된 오디션 프로그램, MBC '악동클럽'에는 1만 명이 지원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된 주인공들은 정작 가수로서 큰 인기를 얻지는 못한 채 어느 순간 사라졌다.
악동클럽의 멤버였던 정윤돈 씨(25)는 현재 결혼식 축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정 씨는 "프로그램을 통해 인기를 얻었지만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데뷔하면서 가수로서 우리만의 색깔을 갖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틈새시장' UCC
대형기획사의 연습생이 되거나 방송국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선발되는 것이 전통적 연예인 데뷔 루트였다면, '틈새시장'을 노리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무기는 'UCC(사용자제작콘텐츠)'다. 누리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아이디어와 실력이 있다면 누구나 UCC 스타가 될 수 있다.
홍대 인디밴드 '제 8극장'은 부엌에서 스톱모션으로 움직이며 노래하는 UCC가 인기를 끌면서 한 음료 광고에 출연하게 됐다. 기타리스트 임슬기찬 씨(25)는 "인디밴드가 음악만으로 화제가 되기는 한계가 있다"며 "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만든 UCC가 우리 밴드에게 큰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 '제 8극장'의 UCC '지금은 카니발' 보기
UCC 스타들이 뭉쳐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한다. '국가대표 UCC'는 '자취의 달인'팀과 인터넷 립싱크 스타 오세진 씨, 댄스 스타 너굴맨 등이 만든 집단창작 팀이다. 이들은 아이디어와 끼를 공유하며 남다른 UCC로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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