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궤도를 이탈한 행성처럼 일상을 일탈한 어두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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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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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조영아 지음/300쪽·1만 원·문학과지성사

좀 이상스러운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이 사는 세상 역시 암울해 보인다. 2005년 등단한 소설가 조영아 씨의 신작 소설집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에는 그런 이들이 득시글거린다. 마네킹 모델, 구두 수선공, 교통상황 모니터 요원…. 외면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평범한 직업인들이지만, 이들은 모두 세상의 뒷면을 보고 있다는 점에서 별스럽다. 그런 깨달음은 이들을 불행하게 하지만, 소설은 더 나아질 거란 희망의 가능성조차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표제작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는 삶에 대한 어두운 상징들이 모호하게 얽혀 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주인공에겐 어릴 때부터 세상의 모든 것이 빙글빙글 돌았다. 어지러움 때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그는 친구들의 놀림감이 된다. 하지만 가위질을 하면서부터 세상이 멈춘다. 그는 가위로 금붕어를 오려 죽이고, 자신을 놀렸던 친구의 옷을 잘라낸다. 누구도 치료하지 못했던 어지럼증을 가위질이란 섬뜩한 행위로 이겨낸 것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사람과 세상, 사물의 뒷면과 가위질에 병적으로 집착하며 정상적인 생활을 못 하게 된다. 명왕성이 행성에서 소행성으로 격하됐다는 기사를 접한 뒤 종적을 감춰버린 아버지, 비정상적인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신앙에 매달리는 어머니 등 주변 등장인물들의 삶도 궤도를 이탈한 행성 같다. 작가는 평범한 삶 속에 도사린 이탈과 반항, 광기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마네킹 24호’ ‘봄날’도 비극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디자이너의 화려한 옷을 걸치고 백화점 쇼윈도에 마네킹처럼 서 있는 일을 하는 주인공. 모델로 데뷔하기 위해 디자이너와 관계를 가진다. 그 디자이너가 함께 일하는 다른 모델도 건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가 원할 때면 요구에 응해줄 수밖에 없다. 세상은 그가 강박적으로 물을 들이켜는 것처럼 언제나 지독한 갈증 상태다.

성실한 구두 수선공의 삶을 그려낸 ‘봄날’ 역시 마찬가지다. 구두 굽을 수선하는 것이 아니면 존재의 가치를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한 주인공은 손에 심한 부상을 당해 일이 힘들어지자 우울증에 빠진다. 어느 날 뒤축이 닳은 아주 거대한 구두 굽을 본 뒤 그는 자신의 온몸을 바쳐 구두의 부품이 되길 자청한다.

자극적인 표현이나 상황은 없지만 해결의 기미도, 위안의 조짐도 보이지 않는 소설 속 세상은 답답하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리 마주하고 싶지 않은, 피하고 싶은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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