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현실과 환각의 경계선… 그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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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5일 03시 00분


◇오즈의 닥터/안보윤 지음/272쪽·1만 원·이룸

한 남자가 정신과 의사 닥터 팽에게 상담을 받고 있다. 환자보다 정신과 의사 상태가 더 안 좋아 보인다. 닥터 팽은 기괴한 분장에 안 어울리는 홈드레스를 입고 여자처럼 굴고 있다. 얼굴에 수염 흔적이 역력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남자는 닥터 팽을 미심쩍어하면서도 상담이 시작되자 자신의 어린시절을 이야기한다. 춤바람이 나서 아들의 교육이나 양육에는 관심이 전혀 없던 어머니와 교통사고로 죽어버린 누나, 아들을 장애인으로 만들어 보험금을 타내려고 하는 아버지. 중간 중간 남자의 진술은 번복된다. 누나가 죽은 날짜는 수시로 달라지고, 아버지는 언젠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계간 ‘자음과모음’이 주관하는 자음과모음 문학상 제1회 수상작인 이 작품은 현실과 환각의 경계를 이리저리 넘나든다.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하고 직장을 잃은 고등학교 세계사 교사인 ‘나’는 법원의 지시로 정신과 의사 닥터 팽에게 상담을 받게 된다. 의사 이름이 비범치 않다는 점, 만날 때마다 옷차림이나 말투가 바뀐다는 점, 의사이기 이전에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 마주치던 성가신 잡상인이었다는 점 등의 단서들은 닥터 팽의 정체에 대한 의심을 미리부터 품게 한다. ‘나’는 닥터 팽과의 의무 상담이 매우 불만인 상태다.

이 불편한 상황은 그가 학교의 모범학생 수연의 커닝을 발견하고 수연의 답안지를 찢어버린 일에서 비롯됐다. 수연은 커닝용 쪽지를 입안에 넣어 삼켜버린 뒤, 그가 자신을 성폭행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며 요구에 따라주지 않자 보복한 거라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려버린다. 그 사건으로 그가 학교에서 해고된 얼마 후 수연이 실종된다. 억울한 성추행 혐의에 이어 실종사건의 용의자까지 된 셈이다.

‘나’의 진술에는 신빙성이 없고 닥터 팽의 존재 역시 현실적이지 않다. 그들의 실체를 암시하는 흔적들은 여러 군데 흩어져 있다. 소설은 ‘나’와 닥터 팽의 교란작전 뒤에 가려진 숨은 진실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드러내 간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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