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의 공자는 그 令名(영명·아름다운 이름)이 천하에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논어’ ‘憲問(헌문)’의 이 章에서 공자는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구나”라고 慨嘆(개탄)했다.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서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탄식을 鶴鳴之嘆(학명지탄)이라고 한다. 공자는 제자에게 “남들이 알아주지 못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가르쳐 왔으니, 이때의 개탄이 학명지탄이 아님은 분명하다.
공자는 실은 사람들이 자신의 덕을 칭송하는 데 대해 “그들은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개탄한 것이다. 子貢도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어찌 선생님을 알아주는 이가 없습니까? 사람들은 선생님의 令名을 듣고 흠모하지 않습니까?”라고 위로했다.
莫我知는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다는 뜻이다. 짧은 부정문에서 빈어(목적어)가 일인칭 대명사이므로 빈어가 동사 앞으로 도치됐다. 也夫는 단정한 뒤 다시 개탄하는 어조를 나타낸다. 何爲∼也는 ‘어찌∼한단 말입니까’로 풀이하며, 의문형의 반어법이다. 莫知子는 남들이 선생님을 모른다는 말이다. 짧은 부정문이지만 빈어가 이인칭 대명사 子라서, 빈어가 도치되지 않았다.
‘사기’ ‘공자세가’에 보면 공자가 鄭(정)나라의 성곽 동문에 홀로 있을 때 정나라 사람이 그의 모습을 보고 喪家之狗(상가지구)라고 평했다고 한다. 정나라 사람은 공자의 실의에 찬 모습을 집 잃은 개와 같다고 한 것이다. 공자는 그 말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공자는 세상이 나를 써주지 않는다고 自嘆(자탄)하지 않았다. 올바른 도리가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을 한탄한지 않고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자탄한다면, 공자의 말씀을 배우는 무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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