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憲問(헌문)’의 賢者(벽,피)世章(현자피세장) 가운데 일부다. 공자는 時中(시중)을 중시해서 올바른 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는 공직에서 물러나라고 가르쳤다. 여기서는 어진 이가 벼슬을 그만두는 상황을 넷으로 나눠 정리했다.
첫째,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는 세속을 아예 떠나라. 둘째, 한 나라나 한 지역이 혼란스러우면 그곳을 떠나라. 셋째, 군주의 용모나 태도가 예의를 벗어나면 그 군주의 곁을 떠나라. 넷째, 군주에게 諫言(간언)을 해도 군주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군주의 조정을 떠나라. 伯夷(백이)나 太公(태공)이 은나라의 紂(주)왕을 피해 바닷가로 이주한 것은 세상을 피한 예이다. 나머지도 각각 역사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벽,피)는 避(피)의 古字다. 본래 (벽,피)(벽)은 손잡이가 붙은 가느다란 曲刀(곡도)로 사람의 허리 부분을 자르는 형벌을 가하는 것을 뜻했다. 또 그런 형벌을 받은 사람은 몸을 구부정하게 취하게 되는데 무언가를 피하는 자세와 비슷하다. 그래서 (벽,피) 자체에 避한다는 뜻이 있었다. 그런데 (벽,피)가 형벌 이외에 임금이란 뜻으로도 사용되자 사물을 피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로 避가 새로 만들어졌다. 한문 문헌에서는 옛 글자와 새 글자를 한데 섞어 쓰기도 한다. 여기서는 뒤에 나온 避를 쓰지 않고 옛 글자인 (벽,피)를 사용했다.
(벽,피)世 (벽,피)地 (벽,피)色 (벽,피)言은 피세의 단계를 차례로 열거했다고도 하고 상황의 차이를 병렬적으로 언급했다고도 한다. 어느 경우든 어진 이는 피세의 이유가 정당하고 태도가 決然(결연)하다. 自暴自棄(자포자기)나 厭世(염세)의 뜻에서 세상과 등진다면 누가 그 피세를 옳다고 하겠는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