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머리말에서 “내 유년기 이야기니까 아마 옛날이야기가 될 것”이라며 “그때는 세상이 온통 남루하고 부족한 것 천지였지만 나름대로 행복했노라고 으스대고 싶어서 썼다”고 말한다.
여덟 살이 되던 해 봄, 서울에서 살던 엄마가 경기도 개풍군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던 나를 데리러 왔다. 집안의 기둥인 오빠의 교육을 위해 할아버지 할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골집을 떠났던 엄마가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가 된 나를 데리러 왔던 것이다.
서울로 가는 날, 마을에서 개성역까지 이십 리 길은 사람들 발길에 다져진 매끄럽고 새하얀 눈길이어서 나는 자꾸 미끄러졌다. 지게에 서울 갈 짐을 싣고 앞서가던 호뱅이(우리 집 머슴)가 보다 못해 새끼를 한 발쯤 얻어와 내 털신에 칭칭 동여매 주었다.
서울에 도착해 보니 엄마의 살림은 형편없이 궁색했다. 꼬불꼬불한 돌계단 길을 한없이 기어 올라가면 나오는 깎아지른 듯한 축대 끝에 제비집처럼 매달린 초가집의 문간방이 엄마의 거처였다. 나는 못 알아들을 창밖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이불 속에서 소리를 죽여 가며 울었다. 엄마는 “안집 애하고 싸우지 마라, 안집 애가 주전부리하는 거 바라보지 마라”는 잔소리를 했고, 감옥소 마당에서 놀다 들어온 날은 “이년, 어디 가서 못 놀아서 거기서 노느냐”며 종아리에 매질을 했다.
겨울방학에 귀향할 때 나는 스케이트를 가지고 갔다. 얼음판에서 친구들에게 솜씨를 뽐내는데 머슴이 뛰어와 나를 사랑으로 업어 들였다. 할아버지는 “어디서 덕물산(개성에 있는 무속의 본산) 무당의 작두춤을 흉내 내느냐”며 담뱃대로 내 정수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원로 소설가인 저자가 유년시절을 소재로 글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저자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성장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년)를 내기도 했다. ‘그 많던…’과 달리 이 책은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에 맞춰 할머니가 손자, 손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쉽게 이야기를 풀었으며 풍성한 삽화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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