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동화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요. 우리가 동화를 제대로 연구하거나 이해하지 않은 채 받아들였기 때문에 생긴 결과입니다.”(송영규 한국번역가협회장)
“동화는 어른들이 먼저 읽어야 하는 문학작품이에요. 그런데 동화는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며 무시하죠. 어른들이 동화의 메시지를 이해해야 아이들에게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겁니다.”(박임전 숙명여대 불어불문학전공 교수)
5일 점심시간 서울 광진구 건국대 근처의 한 중식당에 모인 세계동화연구회 회원 15명은 ‘동화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건국대 상허연구관 415호에서 유명 동화작가인 이규희 씨를 초청해 2시간가량 대화를 한 뒤였다.
세계동화연구회는 박혜숙 건국대 국문과 교수 주도로 2003년 만들어졌다. 뜻을 같이한 프랑스문학 러시아문학 독일문학 영문학 전공자, 아동작가, 아동문학 비평가 등 20여 명이 매월 첫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월례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 동화, 설화를 어린이용으로 각색하면서 생겨
이들은 이야기의 원형으로서의 동화에 관심을 두고 각국의 동화를 파악한다. 새 회원들은 세계적으로 비슷한 이야기가 많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곤 한다. 만지는 물건마다 황금으로 변하게 했다는 미다스 왕의 귀가 당나귀였다는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경문왕의 당나귀 귀 얘기와 너무나 닮아 있다.
송 회장은 “신데렐라류의 이야기는 이본까지 포함하면 세계적으로 500여 개나 된다”며 “오랜 세월 전해오는 동화엔 인류 보편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임전 교수는 “생명력이 긴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대부분 약자가 권력 쟁탈에 성공하는 줄거리다. 어려움을 딛고 권력을 얻게 되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오랫동안 인기를 얻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동화는 이야기의 원형을 담고 있다는 설화(전설 민담 신화)를 어린이용으로 각색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국내의 동화 연구는 아직 부족하다. 박혜숙 교수는 “아직 학계에서 동화는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 장르로 대접받지 못할 정도로 연구가 미비하다”며 “스토리의 원형을 많이 찾아 의미나 상징 구조를 연구하는 것은 문화 콘텐츠의 재창조와도 연결되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 현실적 의미를 알고 전달해야 교육효과
세계동화연구회는 교육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의 끈도 놓지 않고 있다. 동화가 가진 교훈성 때문이다.
박임전 교수는 “동화는 원래 어른들의 이야기였으며 아이들에게 인생을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의미와 구조를 잘 분석해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신데렐라 이야기는 단순히 ‘착한 아이가 운이 좋아서 공주가 되는 것’이 아니다. ‘덕성(자기를 구박하는 언니의 치장을 돕는 일), 규율(밤 12시까지 돌아와야 하는 약속), 인내(수많은 고난을 이겨내는 일)를 갖춘 자만이 성공을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여기엔 현실의 구조가 녹아 있는 것이다.
어른이 이 같은 점을 알고 전달하는 것과 모르고 전달하는 것의 교육적 효과에서 그 차이가 적지 않다. 아동문학가 겸 아동문학평론가인 정혜원 씨는 “최근 한국의 동화계는 판타지류에 이어 역사동화가 유행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어떤 종류든 아이들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현실에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이 좋은 동화”라고 덧붙였다.
연구모임은 앞으로는 주제별 연구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동화 속에는 아버지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아버지의 부재’를 두고 세계 각국을 비교하는 식이다. 동화를 통해 정신분석학적, 철학적, 민속학적 연구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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