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호랑이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2010년 경인년 호랑이해를 앞두고 15일 서울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호랑이의 삶, 인간의 삶’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가 열린다. 선사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한반도에 함께 살았던 호랑이와 인간의 관계, 호랑이가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 예술에 미친 영향 등을 조명하는 자리다.
○ 호랑이와의 만남
울산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에는 줄무늬 호랑이와 점박이 표범 등 호랑이 14마리가 등장한다. 이 땅에 등장하는 호랑이에 대한 최초의 예술적 표현이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은 발표문 ‘호랑이, 산신령을 태우고 산을 호령하다’에서 암각화, 고구려 고분벽화, 토우, 단군신화 등 각종 유물과 신화 민담 속 호랑이의 의미를 분석했다. 천 과장은 전통문화 속에 나타난 호랑이의 의미를 △효와 보은의 수호자 △용맹함과 날렵함을 지닌 벽사((벽,피)邪)의 상징 △절대적인 권위와 힘 △포악, 사나움, 어리석음의 대명사로 분류했다.
호랑이와 까치를 그린 조선시대 민화 ‘호작도’. 당시 사람들은 까치가 신의 뜻을 호랑이에게 전하고, 호랑이는 이 뜻을 좇아서 행동하는 신의 심부름꾼이라고 생각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 인간-호랑이의 균형 붕괴
김동진 한국교원대 교수는 발표문 ‘백성을 위해 호랑이를 잡은 조선’을 통해 “한반도에서 유지되던 호랑이와 인간의 생태적 균형이 무너진 것은 조선이 건국하면서부터”라고 밝혔다.
고려 때까지의 불교적 세계관에서는 인간과 호랑이가 동일한 위계를 갖는 자연의 일부였기 때문에 호랑이 살상이나 적극적인 포획을 장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시대 민본주의를 내세웠던 유교적 세계관은 인간을 중심에 두고 있었다. 이 때문에 ‘위민제해(爲民除害·백성을 위해 해를 없앤다)’를 내세워 적극적인 호랑이 포획정책을 펼쳤다는 것이다.
태종 때 첫 기록이 등장하는 ‘착호갑사(捉虎甲士)’는 호랑이를 포획하는 군대였다. 정부는 호랑이를 잡는 사람을 포상했고 이로 인해 백성들 역시 호랑이 포획을 출세와 부의 수단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 한반도에서 사라진 호랑이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엔도 기미오(遠藤公男) 일본 야조회(野鳥會) 명예회장은 ‘한반도의 호랑이는 왜 사라졌을까?’에서 “조선사람이 수렵을 허가받은 건수는 한일강제병합 후 10년 동안 일본인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반도의 호랑이를 멸종시킨 것은 일제의 남획”이라고 지적했다. 1922년 경북 경주 대덕산에서 호랑이가 잡혔다는 기록을 마지막으로 한반도에서 호랑이는 흔적을 감췄다.
‘호랑이의 삶, 인간의 삶’을 발표하는 이항 한국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장은 “한반도에서 호랑이와 인간은 최소 10만 년 이상 함께 살아왔다”며 “100년이 흐른 뒤 22세기엔 우리가 한반도에서 호랑이의 작은 삶을 허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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