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트랜스포메이션 인 아트: 변신’전 -‘리미널 보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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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5일 03시 00분


기발한 변신… 섬뜩한 변이… 욕망을 벗기다

다문화 가족 -학문 융합 등 변화의 바람 거세진 시대
불안한 존재감 드러내

신체를 통한 자아의 탐색을 다룬 ‘리미널 보디’전에 나온 이자연 씨의 ‘불명’ 시리즈 중 하나.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뒤섞인 정체불명의 존재를 통해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경계를 파고든 작업이다. 사진 제공 갤러리 스케이프
신체를 통한 자아의 탐색을 다룬 ‘리미널 보디’전에 나온 이자연 씨의 ‘불명’ 시리즈 중 하나.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뒤섞인 정체불명의 존재를 통해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경계를 파고든 작업이다. 사진 제공 갤러리 스케이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의 지하전시장. 한구석에 어두운 표정의 남자가 앉아 있다. 실물 크기의 인체 조각인데 관객이 다가서면 그의 얼굴은 카멜레온처럼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감정을 숨기고 상황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쓰는 인간의 위장술을 빗댄 한승구 씨의 작품이다. 늑대 얼굴에 양복 차림을 한 남자들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이인청 씨의 ‘늑대군상’은 전시장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도태될까 두려워 한순간도 멈추지 못하고 무작정 전력 질주하는 도시인의 일상이 그 안에 겹쳐진다.

한국사립미술관협회 주최로 사비나미술관 전관에서 열리는 ‘트랜스포메이션 인 아트: 변신’전이다. 작가 19명이 변신에 대한 인간 욕망을 다채롭게 재구성한 회화 조각 미디어 설치작품 58점을 선보인다. “외모를 바꾸는 성형 열풍과 학문 간 이종교배인 융합, 순혈주의를 허무는 다문화가족의 출현 등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시대적 분위기를 감안해 기획한 전시다.”(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서울 종로구 가회동 갤러리 스케이프에서 열리는 ‘리미널 보디(Liminal body)’전도 이종교배와 혼성에 대한 사유를 화두로 삼는다. “리미널이란 이곳과 저곳의 경계인 ‘문지방’을 뜻하는 말”(심소미 큐레이터)로 전시에는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는 접점으로 몸을 재해석한 작가 4명이 참여했다.

○ 기발하거나 기괴하거나

변신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조명한 ‘트랜스포메이션 인 아트: 변신’전에 선보인 신치현 씨의 ‘타조’. 인체의 부분을 조합해 새로운 실체를 만든 작품은 인간이 인식하는 형체의 본모습에 대한 의구심을 담고 있다. 사진 제공 사비나미술관
변신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조명한 ‘트랜스포메이션 인 아트: 변신’전에 선보인 신치현 씨의 ‘타조’. 인체의 부분을 조합해 새로운 실체를 만든 작품은 인간이 인식하는 형체의 본모습에 대한 의구심을 담고 있다. 사진 제공 사비나미술관
‘변화하는 몸’ ‘위장의 기술’ ‘숨쉬는 오브제’ 등으로 구성된 ‘변신’전은 기발하고 기이한 상상력을 두루 포용한다. 화폐에 등장한 세종대왕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얼굴이 미소와 찡그리기를 반복하는 작품(김기훈), 컵과 접시 등 일상의 소소한 물건과 조명기구를 결합해 만든 그림자 로봇(차상엽) 등은 상상력으로 사물의 변신을 유도한다. 이와 함께 한성대 미디어팀의 쌍방형 소통 작품은 유희와 환상을 체험하게 한다. 이들은 마치 새로운 생명체가 사는 세계로 가는 통로로 안내하듯 화장실 변기와 엘리베이터 문에 영상물을 비추고 관객의 얼굴을 캡처해 스타의 얼굴로 뒤바꾼다.

괴이한 변신 이야기도 있다. 몸에 날개가 달린 소년 등 사람과 동물을 결합한 극사실적 조각으로 유년시절의 판타지를 표현한 설치작업(김현수), 강자와 약자의 관계를 변형생물 시리즈로 드러낸 작품(이희명), 추하게 표현된 인간의 모습으로 외모지상 사회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 드로잉(윤여범), 다리와 손 등 신체의 부분을 조립해 동물 형상을 만든 조각(신치현) 등. 이종교배와 생태적 변이를 드러낸 작품들은 불안감과 함께 존재에 대한 사유를 일깨운다. 전시는 내년 1월 30일까지. 2000∼3000원. 02-735-4032

○ 환상과 공포의 경계에서


갤러리 스케이프의 전시는 몸을 화두로 자아의 변신을 깊숙이 탐색한다. 얼굴에 문신을 새기듯 재봉질로 얼굴사진에 실이 겹겹이 지나가게 만든 윤지선 씨의 ‘나는 너에게 누구인가’ 연작. 작품 앞뒤에 남은 바느질 자국으로 변신과정을 드러낸 점이 흥미롭다. 돼지와 인간의 피부를 촬영한 사진을 이종교배한 이은정 씨는 동물을 열등하게 바라보는 사고방식에 저항한다. 사물과 인체를 결합해 몸을 기이한 풍경으로 재구성한 사타 씨, 인간의 머리를 가진 정체불명의 변종을 만든 이자연 씨의 작업은 실재와 환상,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흐려놓는다. 내년 1월 8일까지. 02-747-4675

변종과 변이, 정체성을 잃어버린 인간의 모습을 다룬 두 전시는 때론 유쾌하고 때론 섬뜩하다. 좀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과 함께 자기 성찰적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차이’를 바탕으로 ‘차별’을 일삼는 세상을 향한 현대미술의 변신이야기. 나와 타자, 인간과 동물,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이 남긴 소외와 폭력적 상처도 그 안에 스며 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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