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전 이춘풍전을 소재로 한 마당극 두 편이 나란히 공연 중이다. 손진책 씨가 이끄는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 ‘이춘풍난봉기’와 오태석 씨가 이끄는 극단 목화의 ‘춘풍의 처’다.
‘이춘풍난봉기’는 13일로 3000회를 돌파한 미추 마당놀이의 최고 인기 레퍼토리 중 하나다. 1976년 ‘멍석 한 장 깔 만한 자리가 되면 상연이 가능한 물건’을 꿈꾸며 초연한 ‘춘풍의 처’는 그보다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극단 목화의 대표 레퍼토리다. 소재나 한국 전통연희 양식을 대표하는 마당극이란 형식은 같지만 내용이나 연출방식, 주제의식은 두 작품이 큰 차이를 보인다. 두 작품을 비교하면 한국 전통의 연희미학의 현대화에 주력해온 두 극단의 발자취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이춘풍난봉기’는 고전 이춘풍전에 충실하다. 천하한량 이춘풍(윤문식)이 평양기생 추월(김성예)에게 반해 장사밑천을 날리고 급기야 추월의 종으로 전락한다. 춘풍의 처 김씨(김성녀)는 남장을 하고 새로 부임하는 평양감사의 비장이 돼 남편을 구한다. 봄바람 춘풍이 낳은 하운이란 아들이 부전자전의 엽색행각을 펼친다는 내용을 추가했을 뿐 원작의 뼈대를 크게 흔들지 않는다.
미추의 마당놀이는 이 지점에서 덧셈의 미학을 펼친다. 세계적 난봉꾼이 돼버린 타이거 우즈부터 시작해 섹시댄스, 가정폭력, 4대강 개발, 북한의 화폐개혁 등 시사적 내용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풍자에 풍자를 더해간다. 이를 통해 전근대적 삶의 비판의 토대 위에 성립한 현대적 삶은 뭐 그리 다를 게 있느냐고 묻는다.
반면 ‘춘풍의 처’는 이춘풍전을 깨끗이 해체한다. 춘풍(김병철)의 허랑방탕한 행각은 생략하고 춘풍 처(이수미)의 한풀이에 초점을 맞춘다. 원전의 김씨를 심씨로 바꾼 그는 평양감사의 수하가 아니라 아예 평양감사가 된다. 그렇지만 추월을 문초하다 정작 혈압이 올라 쓰러지는 쪽은 심씨다. 사경을 헤매는 심씨는 추월의 치마폭을 뒤집어쓰고라도 춘풍의 사랑을 받으려다 허망하게 죽고 만다.
목화의 마당극(엄밀히는 마당극 양식의 무대극)은 이렇게 원전을 잘라내고 생략하고 비트는 뺄셈의 미학을 펼친다. 따귀 빼고 기름까지 뺀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은 ‘세상사가 마음 같이 되더냐’는 오태석 표 쓰디 쓴 소주다.
마당극은 본디 관객과 상호소통을 중시하는 개방성을 특징으로 한다. 미추의 마당놀이는 이에 충실하다. 허랑방탕한 것들을 혼내주는 게 죄가 되느냐는 추월의 논리에 은근히 동조하면서도 그를 혼내야 한다는 관객의 요청을 따라 추월에게 벌을 내린다. 반면 목화의 마당극은 오태석이란 작가의 회색빛 뇌 회랑을 따라 춤을 춘다. ‘춘풍의 처’가 매번 공연될 때마다 내용이 바뀌는 것도 이 때문이지만 그만큼 자폐적이란 뜻도 된다.
이로 인해 미추의 마당놀이에선 배우들이 ‘현기뜽’(추월이가 남자를 유혹할 때 현기증을 평양사투리로 일컫는 말)에 쓰러지지만 목화의 마당극에선 관객이 현기증을 느낀다. 미추의 마당놀이가 관객과 소통을 중시하는 록 공연이라면 목화의 마당극은 연주자의 재량을 중시하는 재즈공연이다.
이런 차이 때문일까, ‘이춘풍난봉기’를 공연하는 서울 월드컵경기장 마당놀이 전용극장에는 암표상까지 등장했고 ‘춘풍의 처’는 19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대학로 대학로예술극장 4관 공연을 마친 뒤 오태석 공연대본전집 16권 출판을 기념해 제자들이 준비한 파티가 열린다. ‘이춘풍난봉기’(02-747-5161)는 내년 1월 3일까지, ‘춘풍의 처’(02-745-3966)는 12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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