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몸은 뒤뚱뒤뚱 미운 오리, 마음은 훨훨 우아한 백조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8일 03시 00분


■ 30대 기자 2인의 ‘발레 도전기’

러시아의 천재적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안무한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여 주인공 오데트는 청순한 백조와 악마 같은 흑조를 1인2역으로 연기한다. 고결한 아름다움과 남자를 파멸시키는 ‘팜파탈’. 그 치명적 매력의 공존…. 1966년 무대에 올려진 이 공연 DVD(유니버설)를 보면서 당시 47세였던 전설적 발레리나 마고트 폰테인의 눈빛과 몸짓에 소름이 끼칠 것 같았다.

바쁜 일상에 치여 종종 일상에서 ‘여성성’을 내려놓고 마는 30대 여자가 ‘홀스’ 사탕을 먹고 정신이 버쩍 든 느낌이랄까. 그래, 20대에 사랑을 할 땐 오데트를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30대인 지금도, 40대 이후의 미래도 과연 내 안에 오데트가 있을까.

30대인 동아일보 산업부 김선미 기자와 김정안 기자가 성인 발레의 세계에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게 된 데는 이런 자각이 있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알렉산드르 푸시킨). 어쩌면 두 기자는 발레에서 삶의 위안을 찾으려 했는지 모르겠다.

○ 김선미 기자의 발레 입문기

우리는 삶에서 야심 찬 목표를 정해 매진하기도 하지만, 간혹 충동적 감정에 휩싸여 예상치 못했던 길에 발을 들여놓기도 한다. 내게 있어 발레가 그랬다. 지난달 일본 도쿄 아카사카의 고급 주택가를 걷다가 우연히 발레 교습소와 마주친 것이다. 청량한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따라간 그곳의 네모난 창문으로는 오후 9시 무렵 흰색 레오타드(발레복)와 타이츠를 입고 발레를 하는 여성들이 보였다. 목덜미가 유난히 희고 단아한 인상의 그녀들. 그 우아한 풍경 앞에 한참 동안을 얼음처럼 꼼짝 않고 서 있었다. 한밤의 발레 교습소 풍경은 서울에 돌아와서도 좀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친정 엄마가 발레복을 입은 50여 년 전 빛바랜 흑백 사진을 봤을 때도, 친구들이 유아 발레의 키 크기 효능에 대해 열변을 토할 때도 심드렁했던 내가 36세란 나이에 발레에 빠져버린 것이다. 우발적이지만 필히 운명적 사건이라고 떠벌리며 발레 레슨을 탐색했다.

마침 서울 시내 백화점 문화센터 겨울학기 수강생 모집 시즌이었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사이트에 들어가 강좌 이름에 ‘발레’라고 입력하자 유아와 어린이 영어발레 말고도 성인 발레 강좌 몇몇이 보였다. 주 1회 3개월 과정에 15만 원을 내고 신청한 강좌는 ‘왕초보도 쉽게 배울 수 있는 로얄 발레’(기초&쉬운 작품). 일단 ‘왕초보’란 말에 안심이 되면서, ‘작품’이란 대목에선 으쓱하는 마음도 솟았다. 단, 화요일 오후 7시 수업은 퇴근이 불규칙한 직업상 엄두를 못 내 가족과 함께할 토요일 오전이란 귀중한 시간을 할애하기로 했다.

사진 제공 지니발레아카데미
사진 제공 지니발레아카데미
12월 5일 토요일 오전 10시. 첫 수업에 들어서자 일찍 온 여성 세 명이 발레 연습복을 입고 바닥에 매트를 깐 채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마음은 한참 전부터 ‘우아한 백조’였지만 정작 추울까봐 검은색 ‘트라이 히트업’ 내복과 보풀 난 낡은 트레이닝 바지를 연습복으로 챙겨갔던 난 흠칫했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은 딱 나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1년 전 이맘때엔 화려한 플라멩코 드레스에 반해 한동안 플라멩코 학원을 드나들었다. 난 옆자리 수강생의 흰색 레이스 레오타드를 연방 흘끔거렸다. 내 본능 속엔 발레리나의 여성성에 대한 동경이 내재해 있었던 거다.

형지영 강사는 일단 두 다리를 모으고 앞으로 쭉 뻗으라 했다. 발끝을 쭉 뻗었다가 다시 가슴 쪽으로 당기는 발레 전 스트레칭 동작이었다. 두 발꿈치를 붙인 채 발목을 꼼꼼하게 돌리기도 했는데, 종아리 뒷부분이 저릿할 정도로 당겨왔다. 두 다리를 벌리고 상체와 한 팔을 각각의 다리 쪽으로 깊게 숙이자 허벅지 안쪽과 허리 부분이 길게 늘어났다. 늘 구부정한 자세로 노트북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던 내게는 그 어떤 마사지보다 시원했다.

이제 바 앞에 일렬로 섰다. 발레의 기본자세를 배우기 위해서다. 두 팔을 아래에 내려놓는 ‘앙 바(En bas)’, 팔을 둥그렇게 만들어 머리 위에 두는 ‘앙 오(En haut)’ 등의 동작이다. 학창시절 프랑스어를 배웠던 나로선 반가운 일이었다. 발레는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됐지만 16세기 프랑스 왕궁으로 시집 간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 왕비와 17세기 루이 14세의 발레 사랑으로 꽃을 피워 프랑스어로 발레용어가 정립됐다. 나는 강사로부터 줄곧 엉덩이에 힘을 꽉 주면서 다리를 들어 올리고, 목은 도도하게 위로 늘리라는 주문을 받았다. 무릎을 구부렸다가 공중으로 껑충 뛰어오르는 동작에선 이마에 땀이 절로 맺혔다.

고단한 일상에서 ‘파 드 부레’
아름다운 탈출을 위해 ‘즈테’


12일 두 번째 수업을 앞두고 강사는 발레 연습복을 사다주는 수고를 했다. 서울 종로의 발레용품점에서 몇몇을 찍어 휴대전화 영상으로 보내준 것이다. 난 자주색 레오타드, 살구색 타이츠와 슈즈, 아이보리색 랩스커트를 골랐다. 가격은 7만9000원.

발레 스트레칭은 여느 피트니스 센터의 스트레칭 수업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큰 벽거울 앞에서 예쁜 발레복을 갖춰 입고 ‘작은 별 변주곡’ 같은 피아노곡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에 좀 더 미학적으로 내 몸에 집중하게 된다. 3개월 동안 배울 작품의 동작을 선보인 강사는 “동작이 느릴수록 몸에 감정을 담아야 한다”고 했다.

맞다. 감정! 온갖 부산을 떨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해 하루 종일 전쟁터에서 총격전을 벌이며 몸과 뇌에 부상을 입는 워킹 맘의 고단한 생활…. 발레가 말없이 가르치는 감정과 엔도르핀은 그 부상을 치유해줄 빨간약이 아닐까. 전업주부든, 워킹 맘이든 아내가 발레를 배우러 주말 오전에 집을 나선다면 이 땅의 남편들은 박수를 쳐 격려할 일이다.

지난 주말에는 서점에 가서 국립발레단이 지은 ‘즐거워라 발레’와 ‘발레 이야기’란 두 권의 책, 전설적 발레리나 마고 폰테인이 연기한 ‘백조의 호수’와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 공연된 ‘호두까기 인형’ 키로프 발레 DVD를 사 섭렵했다. 특히 ‘즐거워라 발레’는 나 같은 발레 문외한이 발레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다. 또 허구한 날 ‘뽀로로’ DVD만 틀어 달라고 조르던 어린 딸이 호두까기 인형 발레에서 눈을 떼지 못하니, 이 어찌 뿌듯한 일이 아닐까.

○ 김정안 기자의 작품반 수강기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소녀 마리는 성탄 파티에서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로 받지만 이를 탐낸 개구쟁이 프리츠의 장난으로 인형은 망가진다. 하지만 마리가 잠든 꿈속에서 호두까기 인형은 멋진 왕자로 변신한다. 그리고 각양각색의 인형과 별 사탕 요정의 화려한 춤들….

독일 작가 E T A 호프만의 동화 ‘호두까기와 쥐의 임금님’을 대본으로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작품, 화려한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기분전환’이라는 뜻으로 줄거리와 관계없이 삽입된 볼거리 춤)이 압권인 ‘호두까기 인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6개월여 다니고 있는 서울 마포구 동교동 ‘지니 발레아카데미’가 12월 작품반으로 호두까기 인형에 등장하는 별 사탕 요정의 춤을 선정했단다.

이곳은 6개월 이상 꾸준히 기본기를 익힌 일반인 수강생들에게 매월 다른 작품을 선정해 가르친다. 지난 해 봄 수강생들은 공연발표회를 통해 그동안 배웠던 작품들을 무대에 올렸다. 화려한 조명 아래 공식적인 발표회가 아니면 어떤가. 관객의 위치를 떠나 작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상으로부터의 유쾌한 탈출이다.

12월 첫 주말 수업. 일주일여 스트레칭을 게을리 해 낑낑대는 난 주눅이 들어 있었다.

“자, 다시 ‘파 드 부레’(pas de bourr´ee·발끝으로 서서 잦은걸음으로 전후·좌우로 가는 스텝), 그리고 다시 오른쪽으로….”

일반 성인들이 대다수인 서울 마포구 동교동 ‘지니발레아카데미’의 수업 장면. 스트레칭과 바 동작은 발레 기본기는 물론 근력과 유연성을 기르기 위한 필수 코스다. 사진 제공 지니발레아카데미
일반 성인들이 대다수인 서울 마포구 동교동 ‘지니발레아카데미’의 수업 장면. 스트레칭과 바 동작은 발레 기본기는 물론 근력과 유연성을 기르기 위한 필수 코스다. 사진 제공 지니발레아카데미
1시간 동안 기본적인 스트레칭과 바 동작으로 몸을 푼 10여 명의 수강생과 함께 본격적인 첫 수업 내용 익히기에 나섰다. 별 사탕 요정의 춤은 경쾌한 선율과 함께 우아하면서도 통통 튀는 듯한 느낌이 매력으로 꼽힌다. 호두까기 인형의 상당부분은 이 같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파 드 부레’의 연속이다. 하지만 발랄하면서도 환상적인 느낌으로 추는 토 댄스(발끝을 세우고 추는 동작)는 이제 막 발레 기본기를 뗀 초보에게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백조들의 우아함 속에서 허둥대는 미운 오리 새끼랄까.

발레는 하루라도 스트레칭을 하지 않거나 새로 익힌 동작을 반복적으로 연습하지 않으면 금방 티가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정직하고 엄격해질 수밖에 없다.

발레를 처음 시작하는 첫 한 달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큰 고비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첫 한 달 동안은 다음 날 아침이 두려울 만큼 여기 저기 당기고 아파오는 근육통으로 ‘계속 해야 하나’를 고민했다. 그럼에도 발레는 뭔가 달랐다. ‘건어물녀’(일에는 열정적이지만 이성에는 흥미를 잃고 귀가 후 트레이닝복 바람에 맥주와 오징어 등의 건어물을 즐기는 미혼여성)가 화두였던 한 해라지만 시간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워킹 맘보다 자유로운 편인 30대 초반 싱글녀들은 뭔가를 열심히 배우려 한다. 황금 같은 여가시간을 ‘방콕’하며 소진할 수는 없지 않나. 나도 발레 전에 요가, 피트니스, 수영 등을 했지만 왠지 이것들은 숙제 같아 따분했다.

발레를 배운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주변 동료들은 가끔씩 발레 동작을 보여 달라는 요구를 한다. 이럴 때 위기를 모면키 위한 대답은 “폭풍 속 구멍 뚫린 지붕 아래 젖은 무대에서도 공연한 안나 파블로바는 ‘영원한 전설’이지만 어설픈 아마추어가 하면 서커스”.

우여곡절을 겪고 난 뒤 두 달여 꾸준히 발레를 하면서부터는 미세하지만 달라지는 몸의 변화가 조금씩 감지되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전보다 자세가 좋아지고 등에 건강한 근육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개인별로 차이는 있지만 첫 1년 정도는 토슈즈(토 댄스를 출 때 신는 발레 신발로 끝을 아교로 굳게 한 신발)보다는 일반 발레 슈즈를 신는다. 발끝으로 서서 추는 토 댄스는 근력과 유연성이 요구되는 고난도 동작이기 때문. 또 초보라도 엄지발톱에 자주 보랏빛 멍이 들 각오를 해야 한다.

함께 발레를 배우는 친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정신없는 일상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몸으로 느끼고 이를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만큼 멋진 일은 없지 않아? 테크닉이나 신체적 조건은 전공자가 아니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우린 영원한 아마추어지만 그럼 어때, 내가 행복하면 그만인 걸….”

선뜻 용기 내지 못하는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말이다. 취미 이상의 ‘자신만을 위한 그 무엇’을 갈망하는 아름다운 당신에게 주저 없이 발레를 권한다.

글=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김정안 기자 jkim@donga.com
디자인=공성태 기자 coonu@donga.com

▼ 프티파, 파블로바, 폰테인… 잊지못할 ‘발레의 전설’ ▼

발레계의 전설적 스타들을 알아두면 감상할 발레 작품을 고를 때 도움이 된다. 가장 먼저 알아둬야 할 인물은 천재 발레 안무가로 꼽히는 마리우스 프티파(1818∼1910).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의 예술 감독으로 부임해 러시아 발레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등 주옥같은 작품들이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안나 파블로바(1881∼1931)는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 발레리나다. 그녀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러시아 황실 발레학교에 입학해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영국의 대 발레리나인 마고 폰테인(1919∼1991)도 그녀를 동경해 발레에 입문했다. 국립발레단사(史)에 따르면 파블로바의 명성은 20세기 초 발레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한국에까지 알려졌다. 동아일보(1920년 6월 7일자)에 ‘세계 제일의 무도가’라는 제목과 함께 그녀의 사진이 실릴 만큼 대단했다.

폰테인은 뛰어난 실력 못지않게 로맨스도 유명하다. 17세에 당시 파나마 대통령의 아들인 티토와 사랑하다 헤어졌지만 그로부터 17년 만에 주미 파나마 사절이 돼 발레 공연을 보러 온 티토와 다시 만나 결혼해 40년을 부부로 살았다. 결혼한 지 10년 만에 남편이 정적의 총에 맞아 반신불수가 됐지만 평생 남편을 사랑했다.

전설적 발레리노(남자 무용수) 중에는 바슬라프 니진스키(1889∼1950)가 대표적이다. 프티파 식 고전발레를 뒤집는 모던 스타일 발레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러나 29세 때 정신 분열증 판정을 받아 숨질 때까지 정신병원에서 지냈다.

현존하는 발레리노 중엔 미하일 바리시니코프(61)가 대중적 인기를 누린다. 1966년 불가리아의 바르나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키로프(현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라는 명예를 뒤로 하고 1974년 미국에 망명했다. 영화 ‘백야’를 비롯해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 주인공 캐리를 유혹하는 신비로운 연인으로 출연하는 등 예술의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해 왔다.

(도움말: 장선희 세종대 무용학과 교수, 참고자료: 국립발레단의 ‘즐거워라 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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