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으로 죽어가면서 암인 줄도 모르면서/마른 복국이 먹고 싶다는 아버지 부름 따라/옛집에 오니 밤 개는 컹컹 짖어/약속이나 한 듯이 또 흰눈은 퍼부어/우리 부자 복국 끓여먹고/통시 길에 나와 보니/옛날의 국자 같은 북두칠성이 또렷했다/구주탄광, 아이모리형무소, 휴전선이 떠오르고/도란도란 밤 깊어 무심히 아버지 다리에/내 다리 얹었다/70년 황야를 걸어온 다리/삭정이 다 된 다리/어금니 악물고 등 돌려 흐느꼈다.’ <송수권의 ‘북두칠성’에서>
마른 복국은 누가 끓여줬을까? 아마도 어머니가 끓였을 것이다. 어쩌면 남편과 자식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저녁밥상. 바늘울음 삼키면서 펄펄 끓여냈을 것이다. 가족사진엔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 사진 밖에서 사진을 찍기 때문이다. 가족식탁에도 어머니가 없다. 어머니는 늘 부엌에 있기 때문이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밤. 아버지와 아들은 묵묵히 복국을 먹는다. 암으로 죽어가는 몸. 늙은 아버지는 말이 없다. 홀홀 국물 식히는 소리. 수저 딸그락거리는 소리. 가끔 아버지의 마른 기침소리가 뒤섞인다. 문득 아버지가 몇 숟가락 뜨다가 물끄러미 아들을 본다. 희끗희끗한 머리, 깊이 파인 이마 주름살, 곳곳 틈새 벌어진 위아래 앞니…. 또 다른 자신이 바로 앞에 앉아 복국을 먹고 있다.
복어는 영어로 퍼퍼(puffer)다. 풍선 같은 것을 훅 부는 자란 뜻이다. 복어가 바로 그렇다. 누가 겁이라도 줄라치면, 배에 물이나 공기를 잔뜩 불어넣어 자기 몸보다 3배나 부풀린다. 김진경 시인은 구수한 충청도사투리로 “복어새끼처럼 왜 그런대유/배에다 바람을 잔뜩 집어 넣구/가시를 있는대루 세우믄 누가 무서워헐 줄 아남유”라며 너스레를 떤다. 한마디로 복어는 ‘뻥 물고기’ 허풍선이다.
복어살집은 미끌미끌하고 희뿌옇다. 꿀돼지 같다. 아예 중국에선 복어를 ‘강돼지(河豚·하돈)’ ‘바다돼지(海豚·해돈)’라고 부른다. 중국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좋아한다. 강이나 바다 돼지라고 예외가 아니다. 중국 북송 때의 시인 소동파(1036∼1101)는 “복어 맛은 목숨과도 바꿀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천계옥찬(天界玉饌)’이라며 먹다가 ‘죽어도 좋다’는 것이다. 그는 아직 때가 이른데도 “지금쯤 복어가 올라올 때가 됐는데…”라며 강물에 복어낚싯대를 드리우고 안달할 정도였다.
술꾼들은 복국에 환장한다. 뜨거운 국물을 훌훌 떠 마시며 쓰린 위장을 달랜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지만, 복국을 먹으면 가슴이 훈훈해진다. 슬픔은 비릿하고 아삭아삭 알이 톡톡 터지는 콩나물과 함께 가신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지만, 향긋하고 상큼한 연초록 미나리를 깨물면 봄 냄새가 물밀듯이 쏟아진다. 복어맑은탕은 담백하고 시원하다. 바람 불어 쓰러진 산 있더냐? 복어살은 덤덤하고 은근하다. 눈비 맞아 썩은 돌 있더냐? 복어회는 그윽하고 감칠맛이 난다.
복국집은 오래된 집이 최고다. 주방장이 오래되면 사고 날 염려가 없다. 우선 부산해운대복국집이 먼저 떠오른다. 금수복국(051-742-3600), 초원복국(051-743-5291), 영주동삼대복국(051-465-7210), 미포할매복국(051-741-4114), 할매집원조복국(051-747-7625), 일광대복집(051-721-1561) 등이 그렇다.
서울에도 이름난 복국집은 많다. 충무로 극동빌딩 뒤 부산복집(02-2277-3344), 경복궁역 3번출구 태진복집(02-733-3730), 종로 르메이에르빌딩 1층 제주복집(02-733-4250), 북창동 참복집(02-779-0681), 을지로입구 다동 참복집(02-777-1786), 신촌 현대백화점 옆 삼호복집(02-337-9019), 강남역 3번출구 삼호복집(02-3474-2512), 반포동 조은복집(02-547-1133), 프라자호텔 뒤 남양복집(02-755-6164), 부산해운대 금수복국 분점인 압구정동 금수복국(02-3448-5488), 대치동 금수복국(02-508-1900).
마산 복골목도 빠질 수 없다. 30여 개의 복국집이 늘어서 있다. 경북복집(055-223-8002), 경남복집(055-246-9896), 쌍용복집(055-246-6866), 남성복집(055-246-1856).
복어 암놈 알과 간엔 독이 있다. 청산가리보다 10배 넘게 독하다. 2, 3월 산란기 때가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때다. 복어는 잡히면 “바각바각” 소리 내어 이를 간다. 무섭다. 참복 한 마리엔 어른 33명을 죽일 만큼의 독이 들어 있다.
복어는 독이 강할수록 맛이 깊다. 추운 겨울에 먹는 게 으뜸이다. 독과 맛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독할수록 맛있고, 맛있을수록 독하다. 일본 미식가들은 약간 독이 들어있는 복국을 즐긴다. 그걸 먹으면 혀가 슬쩍 마비되고, 몸이 어찔어찔 짜릿한 기분이 된다. 죽지 않을 정도의 극히 적은 독을 살짝 뿌리는 것이다. 일본의 어느 유명한 가부키(일본 전통연극) 배우는 친구 3명과 함께 복국을 먹다가 죽은 일도 있다. ‘설마 괜찮겠지’하고 친구들 것까지 다 먹다가 중독된 것이다.
어쨌든 복요리는 일본에서 고급요리의 하나이다. “복국을 먹는 이는 어리석지만, 그렇다고 복국을 먹지 않는 사람은 더욱 어리석다”고 말한다. “무섭다고 복국을 안 먹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도 없다”며 비아냥댄다. 복어와 히레사케는 찰떡궁합이다. 히레사케는 복어 꼬리지느러미를 구워 넣은 따끈한 정종이다. 딱 한잔이면 행복하다. 두 잔이면 온몸이 녹작지근하다.
어릴 적 입맛은 평생 간다. 어머니가 해준 음식 맛은 혀끝에 인이 박힌다. 그 입맛은 죽음 앞에서조차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입맛’으로 말을 대신한다. 예수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는 것과 같다. 말은 헛되다. 입맛은 정직하다.
구수한 복 껍질이 입천장에 찰싹 깻잎처럼 달라붙는 맛. 다시마, 다진 마늘, 대파, 고춧가루 등으로 우려낸 뜨끈뜨끈한 복 국물. 술꾼들은 그 맛을 떠올리며, 오늘도 그 독한 술을 툭툭 털어 넣는다. 복국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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