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을 무대화하면서 배우의 몸짓과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 독창적 연극시학을 펼친 네크로슈스의 ‘파우스트’(왼쪽)와 안중근 의거를 극화하면서 한국 뮤지컬의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준 창작뮤지컬 ‘영웅’. 사진 제공 LG아트센터·에이콤
영화는 필름이란 물질로 보존되기에 언제든 반복 재생이 가능하다. 그러나 공연은 막을 내리고 나면 소멸한다. 그 순간 그곳에서 벌어진 일은 관객의 뇌리에서만 살아 숨쉰다. 설혹 필름으로 촬영해 놓는다 해도 ‘관객의 기억’이란 햇빛이 닿지 않으면 예술적 부패를 피할 수 없다. 지나간 공연이 예술적 광합성을 계속하기 위해선 그렇게 기억이란 한 줌의 햇빛이 필요하다. 그것이 비록 주관에 의해 감염된 기억일지라도.
2009년 1년간 공연기자로서 250여 편의 공연을 지켜봤다. 그중에서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뚜렷이 기억되는 작품만 꼽아봤다.
가장 기억나는 연극은 리투아니아 연출가 에이문타스 네크로슈스의 ‘파우스트’다. 괴테 원작의 대사를 그대로 살리면서 다양한 오브제(상징적 물체)와 배우의 몸짓을 통해 새로운 예술체험의 공간을 열어젖히는 독특한 연극시학에 눈을 뜨게 해줬다. 그것은 관념적 언어의 세계를 직관적 사물의 세계로 풀어내는 것이었다. 파우스트를 짓누른 학문의 세계는 책과 함께 노끈으로 꽁꽁 묶인 채 천장에서 떨어지는 의자로 표현되고, 파우스트가 악마와 맺는 계약서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파동의 형태로 전환하는 밧줄로 형상화된다.
독일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의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은 가공된 허구가 아니라 날것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무대에 올려도 연극이 성립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한국 공연을 위해 발탁된 강신주 동아대 교수를 포함해 8명의 일반인이 무대 위에서 펼친 다양한 담론이 극적 재미로 발효되는 것을 맛보는 것은 분명 신선한 경험이었다.
창작극 중에는 극단 골목길의 ‘너무 놀라지 마라’(박근형 작·연출)와 극단 창파의 ‘한스와 그레텔’(채승훈 연출)을 꼽겠다. ‘너무 놀라지 마라’는 한국사회의 이중성을 풍자하는 입담과 힘이 단연 최고였다. 온갖 핑계를 대며 화장실에서 목매 자살한 아비의 시신조차 거두지 않는 가족의 초상을 통해, 겉으론 명분을 앞세우지만 속으론 자기 잇속만 챙기기 급급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1984년 이후 25년 만에 무대화한 ‘한스와 그레텔’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극작가 최인훈의 저력을 보여줬다. 40여 년간 전범으로 비밀감옥에 투옥됐던 나치정권의 부총통 루돌프 헤스를 모델로 자신의 신념에 투철한 삶이 빠지는 함정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독일어로 번역해도 손색없을 예술적 성취를 보여줬다.
번역극 중에는 영국 극작가 마이클 프레인 원작의 ‘코펜하겐’(윤우영 연출)과 일본 극작가 가네시타 다쓰오 원작의 ‘겨울꽃’(이강선 연출)이 잊혀지지 않는다. ‘코펜하겐’은 20세기 양자역학 혁명을 이끈 덴마크 과학자 닐스 보어와 그의 제자인 독일 과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만남을 통해 난해한 양자물리학의 세계를 기막히게 극화해냈다. ‘겨울꽃’은 안중근의 의거를 근대적인 죽음의 미학이 아니라 탈근대적 생명의 미학으로 포착해낸 발상의 전환이 놀라웠다.
뮤지컬 중에선 창작뮤지컬로 안중근 의거를 그린 ‘영웅’과 병자호란을 극화한 ‘남한산성’, 한국어 뮤지컬로는 ‘드림걸즈’, 내한공연작으로는 ‘렌트’를 꼽겠다. ‘영웅’과 ‘남한산성’은 기술적 측면에서 한국 뮤지컬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줬다. 다만 ‘영웅’은 극본에서. ‘남한산성’은 음악적 완성도에서 아직도 풀어가야 할 과제가 남아있음을 보여줬다. ‘드림걸즈’는 브로드웨이의 원재료를 한미 공조로 재창작해 역수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선보였다.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뮤지컬 ‘렌트’는 뮤지컬에서 배우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재인식하게 한 작품이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