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세 외면하고 얻는 깨달음은 공허할 뿐”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4일 03시 00분


■ ‘시대에 부응하는 불교 교육’ 강조 조계종 현응 교육원장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현응 스님은 편안해 보였다. 시종 웃으며 말을 건넸지만 “스님들 교육이 변해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변영욱 기자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현응 스님은 편안해 보였다. 시종 웃으며 말을 건넸지만 “스님들 교육이 변해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변영욱 기자
“자비심 없는 깨달음은 공허합니다. 사회와 역사를 고민한 깨달음으로 사회를 데워야 합니다. 이게 바로 스님들 교육을 바꿔야 하는 이유입니다.”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55)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박학다식한 언변으로 듣는 사람이 잠시라도 딴 생각을 하면 이야기의 맥락을 놓칠 정도였지만 스님들 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역설하는 대목에서는 말의 속도를 늦췄다.

현응 스님이 취임한 지 한 달 반. 신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취임 일성으로 스님들의 교육 강화를 이야기하면서 승가대 등 종단 교육기관을 총괄하는 교육원장은 가장 주목받는 자리가 됐다. 취임 이후 종단 교육의 새로운 마스터플랜을 구상하며 바쁜 시간을 보낸 현응 스님을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종 총무원 내 집무실에서 만났다.

현응 스님은 “불교가 신비주의에서 벗어나 역사이론 또는 사회철학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자신의 불교관을 함축하는 ‘보디사트바’를 강조했다. “보디사트바는 보디(bodhi·깨달음)와 사트바(sattva·역사)가 결합한 말로 한자로는 보리살타(菩提薩a), 즉 보살을 뜻합니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에 윤리와 도덕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불교의 소명입니다.”

그는 “속세를 벗어난 이상 세계가 있다는 환상이 불교계에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상적 세계를 알아가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중생을 위한 자비의 실천을 고민할 때입니다.” 스님은 이런 생각을 담은 책 ‘깨달음과 역사’(불광출판사)를 최근 출간했다.

현응 스님의 불교관은 새 교육 마스터플랜에 녹아들었다. 그는 ‘시대와 역사에 부응하는 불교 교육’을 모토로 교육의 현대화에 나설 계획이다. 스님은 “사회를 알아야 자비가 가능하다”며 “승가대 교육에 사회학, 법학, 윤리학, 미학 등을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학교(부산 경남중)를 졸업하고 1971년 출가한 현응 스님은 한문 고전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과학 분야를 두루 섭렵한 학승으로 이름이 높다. 스님은 “유학자 집안 출신으로 한학은 자연스럽게 익혔고, 고려대장경연구소 이사장인 종림 스님에게서 인문학 사회학을 배우며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전했다.

현응 스님은 내년 세부 교육프로그램을 확정해 이듬해부터는 시행에 들어갈 계획이다. 그동안 스님들은 출가 이후 4년간 승가대에서 크게 내전(內典)과 외전(外典)을 배웠다. 내전은 금강경, 반야심경 등 부처님의 말씀이며 외전은 논어, 맹자 등 한문 고전과 불교사를 포함한다.

한문 고전 위주의 수업은 한글 수업으로 바뀐다. 현응 스님은 “스님들 사이에 한문으로 된 진서(眞書)로 공부해야 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요즘 출가하는 스님들은 한문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고문헌 등 심화 교육은 대학원 과정을 신설해 교육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기관의 명칭문제를 언급하며 “승가대를 흔히 강원이라고 부르는데, 종헌종법에 강원이 아니라 승가대라고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강원이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지만 현대화한 교육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출가한 지 5년 이상 된 스님들을 대상으로 매년 1회 이상 재교육을 하는 것도 준비하고 있다.

“승가대를 졸업하면 책을 찾아 스스로 공부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기업, 정부기관 등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구성원에 대한 재교육이 이루어지는 요즘, 스님들도 체계적인 지도를 통한 재교육이 필요합니다.”

현응 스님은 “재교육 자체도 중요하지만 경제, 통일, 세계화 등 현대적 주제를 강의해 이 시대와 호흡하는 교육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현응 스님은:
△1955년 경남 창원시 출생 △1971년 해인사로 출가 △1972년 해인사 승가대 졸업 △1985년 해인사 승가대 학감 △1995∼96년 총무원 기획실장 △2003년 불교신문사 사장 △2004∼2008년 해인사 주지 △ 2009년 11월 조계종 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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