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은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해다. 이를 계기로 한일 관계에 대한 인식을 용어 정리를 통해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통상 ‘식민지기’ ‘일제강점기’ 등으로 불리는 시기에 대한 명칭이다. 대안으로 떠오르는 용어는 ‘대일항쟁기’다. 일제강점기라는 용어는 1980년대 중반부터 역사학계의 공감을 얻어 이전에 쓰이던 일제시대 등을 대체해 왔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전공한 복기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식민지’나 ‘강점기’는 일본이 한국을 지배한 시기에 해당하므로 말뜻 그대로 풀이하면 그때 일어난 일은 한국사가 아니라 일본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며 “이것이 불편해 ‘일제강점기’라는 표현을 병행하고 있지만 이 역시 강점의 주체는 일본으로 한국의 역사가 일본사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문제를 피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헌법에는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이 임시정부에 있다고 돼 있다”며 “현 정부의 법통을 고려할 때 해당 기간을 싸운 기간이라고 해야 맞지 지배당한 기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원나라가 고려를 지배하던 시기를 우리가 원의 강점기, 원의 식민시절로 정의하지 않듯이 ‘대일항쟁기’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고려 독립을 위해 활동하던 군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고려의 정통성을 주장하던 임시정부나 왕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복 교수는 “외형적으로는 지배를 받았지만 내부적으로 그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가 국제정세의 변화를 이용해 독립을 쟁취했다면 지금이라도 그런 관점을 반영한 용어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9월 국회 본회의에서는 당시 한나라당 정문헌 의원 외 58인의 발의로 일본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일제강점기 등 유사 표현을 ‘대일항쟁기’ 등으로 바꾸자는 결의안이 상정돼 155명의 찬성으로 통과된 바 있다.
역사학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근현대사)는 “기본적으로 적절한 표현”이라고 동의하면서 “강점도 사실이고 항쟁도 사실인데 강조점을 어디에 둘지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제가 식민지배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강점이라는 용어를 살려 피해자임을 강조해야 한다는 측면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독립운동사)는 “역사를 주체적으로 인식하는 ‘대일항쟁기’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적극 찬성한다”며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계기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측면의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진순 창원대 교수(근현대사)는 “특정 시기를 지칭할 때는 보편적인 삶을 규정해야 하는데 ‘대일항쟁기’라는 용어는 지나치게 목적지향적인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식으로 따지면 지금의 시기도 ‘분단시대’보다 ‘통일지향의 시대’로 하자는 것이 가능한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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