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좀 추신다는 분들이라면 기막힌 안무에 감탄하실 거고, 못 추는 분들도 오로지 몸의 언어만으로 가슴 찡하고 눈시울 뜨거워지는 경험을 맛보실 거예요.”노래를 부르지 않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컨택트’의 첫 한국어 공연에 출연하는 두 춤꾼의 얼굴엔 행복한 홍조가 가득했다. 29일 서울 남산창작센터 연습장에서 만난 국내 대표적 뮤지컬 안무가 이란영 씨와 국립발레단 프리마 발레리나 김주원 씨가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의 뮤지컬 출연은 파격적이다. 국내 대표적 발레리나인 김 씨는 이번 무대가 뮤지컬 첫 도전. ‘영웅’과 ‘모짜르트!’ 안무가인 이 씨는 1999년 ‘페임’ 출연 이후 10년 만에 무대에 선다.》
무엇이 두 사람을 사로잡았을까. 말할 것도 없이 춤이다. 2000년 3월 브로드웨이 링컨센터에서 초연된 ‘컨택트’는 댄스컬(댄스+뮤지컬)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낸 작품. 세계적 안무가 수전 스트로먼이 안무와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노래 없이 춤과 최소한의 대사만으로 구성돼 ‘과연 뮤지컬로 볼 수 있느냐’는 논란을 불러왔다. 그러나 그해 토니상 뮤지컬 분야에서 10개 부문 후보에 선정돼 작품상, 안무상, 남녀 조연상 4개 부문을 수상했고 이후 ‘무빙 아웃’(2002년) 등 춤을 중심으로 한 뮤지컬의 선도작이 됐다.
두 사람은 ‘컨택트’를 언제 처음 접했을까. 놀랍게도 두세 달 전, 그것도 DVD 영상으로 봤단다. 김 씨는 선화예고 동창인 친구 홍세정 씨 집에서 ‘컨택트’를 보고 한눈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홍 씨에게서 “저 작품 곧 국내에 들어온대”라는 말을 듣고 “야, 저건 내 거야”라고 했는데 국립발레단 게시판에 오디션 공고가 나 직접 지원했다고 한다. 홍 씨가 이 작품의 협력연출·안무를 맡은 것은 그 다음에 알았다고.
이 씨는 그보다 뒤였다. 제작진에게 출연제의를 받고 “아직 날 무용수로 봐줘서 고맙지만 바빠서 안 되겠다”고 사양했다가 역시 DVD로 작품을 보고 ‘무대 전환과 배우의 호흡까지 안무로 승화시킨 데 반해서’ 오디션을 자청했다. 그 결정으로 이 씨는 요즘 몸무게가 6kg이나 빠졌다. 오전엔 내년 1월 20일 무대에 오를 ‘모짜르트!’의 안무를 지도하고 오후엔 ‘컨택트’ 연습을 하느라 쉴 틈이 없기 때문이다.
‘컨택트’는 독립된 3개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1장 ‘그네타기’는 프랑스 풍속화가 프라고나르의 그림 ‘그네’에서 영감을 얻은 성적 환상을 잡아냈다. 2장 ‘당신 움직였어?’는 무뚝뚝한 남편에게 염증을 느끼는 중년여성의 환상을 그렸고, 3장 ‘컨택트’는 우연히 술집에서 본 젊은 여성에 대한 중년 독신남성의 환상을 담았다.
이 씨는 2장의 여주인공 ‘와이프’ 역을, 김 씨는 3장의 여주인공 ‘노란 원피스의 여인’ 역을 발레리나 이영진 씨와 나눠 맡는다. 와이프 역이 클래식 발레 위주의 춤을 선보이는 반면 ‘노란 원피스의 여인’은 자이브, 스윙, 탭댄스 등 대중적 흡인력이 강한 춤을 추는 점이 흥미롭다. 이 때문에 세종대에서 발레를 전공했지만 영국에서 극무용을 전공한 이 씨는 대학 4학년 때 졸업작품으로 출연한 ‘돈키호테’ 이후 20년 만에 발레를 추게 됐고, 현역 최고 발레리나인 김 씨는 한 번도 춰본 적 없는 춤들을 섭렵하게 됐다.
이 씨는 “하체는 발레를 추면서 상체로는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더 크다”면서도 안무가의 위치에서 무용수의 위치로 돌아가 보니 새로 배우는 게 많다고 했다. 김 씨는 “힘들긴 해도 발레리나로서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몸 언어를 익히는 게 아주 짜릿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 씨의 춤에 대해 “처음엔 포복절도하고 나중엔 눈시울이 뜨거워진다”고 평했다. 이 씨도 김 씨에 대해 “춤추지 않고 그냥 등장만 해도 ‘빛이 있으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눈부시다”고 칭찬했다. ‘컨택트’는 내년 1월 8∼17일 LG아트센터(02-2005-0114), 1월 22∼31일 고양아람누리(1544-1555)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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