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무장공비 9명을 태운 북한 잠수정이 강원 속초 해안에 침투했다. 꽁치잡이 어선이 쳐놓은 어망에 걸려 표류하던 잠수정 선원들은 한국군의 추격을 받다 모두 자살했다. 극단 ‘백수광부’의 연극 ‘고래’는 이 사건을 소재로 지난해 초연됐다.
31일 개막하는 공연에는 올해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 수상자인 박근형 씨(극단 ‘골목길’ 대표·서울예대 극작과 교수)가 연출을 맡았고 ‘골목길’과 ‘백수광부’의 배우들이 함께 출연한다. 지난해 밀양 연극제에서 이 작품을 인상 깊게 봤던 박 씨가 연출을 자처하고 나섰다. 초연 때는 희곡을 쓴 이해성 씨가 연출을 했다.
무대는 남쪽 바다에 잠입한 북한 잠수정 안. 지난해 공연에는 잠수정의 천장이 없었지만 올해는 돔 형태로 만들어 한층 숨 막히는 좁은 공간을 그려낸다. 등장인물은 잠수정을 조종하는 선원 4명과 공작사업을 수행하고 돌아온 남파 간첩 3명이다. 극 전반부에는 남한에서 훔쳐온 브래지어와 콘돔을 두고 걸쭉한 농담을 펼치지만 한국군에게 쫓기는 후반부에는 총성이 울리고 덧없이 생명이 스러져간다. 초연 무대가 거친 남성미를 부각시켰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비좁은 잠수정을 분주하면서도 감성적인 공간으로 살려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닫힌 공간 안에는 남과 북,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살아있다는 거, 고 자체가 욕망 아니네?” “욕망만 채우는 거이 행복입네까?” 같은 대사는 인간답게 사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드라마투르그(연출을 도와 희곡 연구와 자료 조사, 작품 해석을 맡는 사람)를 맡은 김용수 서강대 교수는 “잠수정은 깊은 바닷속에 갇혀 있는 슬픈 고래를 연상시킨다. ‘고래’가 남북 특수상황을 넘어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우리도 ‘출구 없는 방’에 갇혀 오지 않는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박근형 연출은 “10년도 더 지난 ‘쉬어터진’ 이야기지만 다시 불러볼 만한, 시대의 화두”라고 말했다.
2007년 신작 희곡 페스티벌에서 당선했고 2008년 밀양 연극제에서 희곡상을 받았으며 서울문화재단 창작활성화 사후지원작으로 선정됐다. 31일∼2010년 1월 17일 서울 대학로 정보소극장. 2만 원(청소년 1만 원). 02-814-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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